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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성주 세종대왕자태실과 태실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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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기일을 앞두고 묘소에 들린 후 인근에 있는 성주 세종대왕자태실과 선석산 산행을 했네요.

같이 소개를 할려다가 두 곳 다 내용이 흐트러질 것 같아 산행기는 분리하여 소개합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밑에 사람 없다는 건 택도 없는 말.

예부터 권력이나 재력에 의하여 인간사회는 엄연하게 계단이 만들어져 있지유.

이건 요즘도 불변의 원칙이구요.

옛날 일반 가정에서 아이를 낳으면 탯줄을 잘라 불에 살라 버리는 게 일반적인데 왕의 아이는 그 탯줄마저 함부로 다룰 수가 없어 특별히 간수를 했답니다.

이 중 오늘 소개되는 곳은 경북 성주에 있는 세종대왕자태실(世宗大王子胎室).

세종의 아이들 탯줄 보관소입니다.

세종의 6명 부인들에서 난 알라들 중 머스마 18명과 손자 단종의 탯줄을 이곳에 묻어 두었지요.

 

이곳 태실이 있던 자리는 원래 성주이씨의 시조인 고려 13세기 인물 이장경의 묘터였습니다.

어느 도사가 이장경한테 이 자리를 지목하면서 이곳에다 묘를 쓰면 후손이 번영할 것인데 후손들이 잘 되더라고 절대 재실을 짓거나 묘를 호화스럽게 치장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 뒤 그의 후손들이 모두 벼슬길에 오르고 큰 인물들이 되었는데 후손들이 성묘를 할 때마다 묘역이 초라하다고 느껴 그곳에다 재실을 짓게 되었답니다.

 

그 뒤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던 세종대왕이 유명 지관들을 불러 전국의 태실 명당을 잡아보라고 했는데 지관들이 명당자리를 찾다가 이곳 성주에서 소나기를 만나 비를 피한 곳이 마침 이곳 지장경 묘 옆에 있던 재실.

지관들이 비를 피하며 앞을 보니 이곳이 바로 천하의 명당이었네요.

곧장 임금한테 보고를 하고 이 자리를 태실자리로 지정하였답니다.

졸지에 이장경의 묘는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구요.

도사의 말을 무시하고 재실을 짓는 바람에 임금한테 명당을 빼앗겨버린 성주이씨의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조선 임금들 중에서는 스태미너가 돋보이는 왕이 몇 있는데 세종도 그중 한 명입니다.

온갖 질병을 달고 있어 앉아있는 종합병원이었던 세종한테 이 부분은 특별한 재주였네요.

퍼스트 레이디 소헌왕후 외에도 열 명의 후궁이 더 있었는데 공식적인 부인 수는 정부인 포함 6명이고 자녀는 총 22명(18남 4녀).

이 중 18명의 머스마들과 세종의 손자 단종의 탯줄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답니다.

 

암튼 이곳 태실은 조선의 왕 중에서 탯줄을 단체로 보관한 유일한 장소라 여러 가지 의미가 있고 학술적인 가치가 높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현재 이곳에 있는 19기의 태실 중에는 뚜껑이 사라진 5곳이 있는데 이는 수양대군(뒤에 세조)이 왕좌에 오른 뒤 자기가 왕이 되는 걸 반대한 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과 계유정난에 죽은 안평대군의 태실을 파괴하라고 명하여 산 아래로 파 던져졌으나 1975년 이곳이 도의 유형문화재로 지정이 되면서 지자체에서 기단석을 찾아서 복원해 놓은 것입니다.

 

세조가 왕이 되고 그 뒤 신하들이 임금의 태실은 별도로 태봉을 만들어 옮겨야 한다고 주장을 하게 되는데 이에 세조는 형제들이 있는 자리인데 그냥 놔두라고 합니다.

태봉(胎封)이란 탯줄의 주인공이 나중에 왕이 되면 태실을 따로 거창하게 만든다는 걸 말합니다.

암튼 이때다 하고 아부에 민첩한 신하들이 찬미가를 적어서 거북이 등짝에 세워놓게 되는데 이 내용은 지금도 '세조대왕 태봉 가봉 비문(世祖大王 胎峰 加封 碑文)'이라고 하여 수양대군(세조)의 태실 앞에 세워져 있답니다.

뒷날 이 태비문은 백성들의 미움으로 모조리 지워졌다고 하는데 저도 가까이 가서 아무리 눈 닦고 봐도 뭔 글자는 도저히 확인이 되지 않네요.

다만 조선왕조 실록에 이 내용이 남아 있는데 세조의 찬양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번역본 일부만 옮겨 봤습니다.

 

아아! 우리 주상께서는 하늘을 받들고 도(道)를 몸받아서 문(文)에 빛나시고 무(武)에 뛰어나시고, 전하의 총명(聰明) 예지(叡智)하시고 겸손(謙遜) 검약(儉約)한 덕은 이루 다 이름하여 말할 수 없으나, 이 한 가지 일을 가지고도 그 겸손하고 검소함을 숭상하여 지위가 더욱 높을수록 덕이 빛나는 지극함을 알 수 있으니, 조선 억만년의 무강(無彊)한 기초가 더욱 길이 아름다울 것을 또한 여기에서도 점칠 수 있을 것이다.

명(銘)에 이르기를, ‘아아! 빛나는 오얏나무(李, 이씨), 천 가지 만 잎사귀라. 산매자꽃(형제를 가르키는 말) 함께 비치는데 홀로 빼어나 밝게 빛난다. 용이 날아 하늘에 오르니 세상이 맑고 편하며 우뚝한 신공(神功)은 제도를 갖추고 밝게 하였다.

 

 

성주 세종대왕자태실(世宗大王子胎室) 위치 보기 : 이곳

 

 

 

 

이곳 들려서 태실 구경을 하면서 묘한 생각들이 많이 드네요.

왕의 아이는 그 탯줄도 이렇게 대접을 받았다는 ...

 

 

주차장에서 태실이 있는 곳까지는 걸어서 5분 정도 올라가면 됩니다.

주변의 소나무 숲길이 참 멋지구요.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선석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아래로 마을이 내려다보입니다.

 

 

다 올라왔네요.

설명글이 적혀있고 바로 위가 태실입니다.

 

 

태실이 있는 곳은 조금 특별하게 생긴 장소네요.

경주 가기 전 건천 오봉산에 있는 여근곡 비슷하게 생겼네요.

 

 

옛날에는 태실 울타리는 모두 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곳 석재 울타리는 근간에 만든것 같습니다.

 

 

좌측은 정부인 소헌왕후의 아들 탯줄이 묻혀있는 곳이고 우측은 그 외 부인들이 낳은 왕자들의 탯줄이 묻혀 있습니다.

다만 우측 맨 앞은 다음에 세조가 된 수양대군의 태실이구요.

소헌왕후(정부인)의 왕자들은 모두 대군으로 호칭이 되고 그 외 후궁들의 왕자들은 모두 군으로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사진을 크게 보려면 이곳 클릭

 

 

맨 앞에 높게 솟은 비석이 거북이 위에 세워져 있는 세조의 태봉 비석입니다.

 

 

모두 태실 앞에 이런 비석들이 하나씩 세워져 있구요.

 

 

 

 

 

맨 뒤 구석자리에 따로 외롭게 마련되어 있는 이 태실은 세종의 귀엄둥이 손자 단종의 태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구요.

그를 해한 삼촌 세조와 같은 땅에 태가 묻혀 있네요.

 

 

측은한 마음이 가득 느껴지는 단종의 태실.

 

 

태실 뚜껑이 없고 기단만 있는 곳들이 몇 곳 보이는데 이건 모두 세조의 작품입니다.

원래가 온전하게 있었는데 세조가 자기 왕 되는 걸 반대한 형제 왕자들의 태실을 파괴하라고 명령하여 그들의 태실은 모두 파 뒤집혀서 산 아래로 던져졌는데 근래에 들어 이의 기단을 수습하여 위와 같이 만들어 둔 것이구요.

 

 

이렇게 명패가 적힌 글과 아랫쪽에 대략의 내용이 있네요.

금성대군은 조카 단종과 상당히 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이게 수양대군의 탯줄 보관소.

뒷날 세조 임금이 되었지요.

임금이 되면 태봉이라 하여 태실을 단독으로 옮겨 거창하게 마련하는데 이를 세조가 겸손(?)하게 거절하면서 형제들과 이곳에 있겠다고 하였는데 그 시절 예조판서였던 홍윤성이 이 말에 감동(??)하여 온갖 아부성 글들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 거북이 위에 세워둔 것이 세조의 찬양비인 '세조대왕 태봉 가봉 비문(世祖大王 胎峰 加封 碑文)'.

 

 

이 비석입니다.

 

 

도저히 판독 불가.

소문에는 세조가 미워서 백성들이 지웠다고 하는데 그 시절 엄격하게 관리되던 왕의 태실에서 일반 백성들이 접근을 한다는 건 불가능.

아마도 세월이 지나 풍우에 자연스럽게 마모가 된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가장 앞에 보이는 것이 세조(수양대군)의 태실이고 우측 뒤 귀퉁이에 조그맣게 보이는 것이 단종의 태실.

 

 

마을 뒷산이 선석산입니다.

저곳에 오르면 이곳 태실이 곧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이 있어 이곳 구경하고 산행을 할 예정.

 

 

태실이 지방문화재가 되는 바람에 앞쪽에 근사한 공원도 생겼답니다.

공원 이름은 생명문화공원.

 

 

태실문화관이 있네요.

정말 한적합니다.

한분이 관리를 하고 있는데 들어가면서 수고하십니다.. 하는데도 본척도 하지 않네요.

정말 수고하지 않는 공무원입니다.

하루종일 놀자묵자 보직이네요.

 

 

왕자들의 태 항아리.

 

 

동선을 따라 관람을 하는데 갑자기 애 우는 소리가  들려 깜짝..

센스를 달아두어 누가 들어오면 아이 낳아 우는 소리를 들려주는듯한데 아무도 없는 관람관에서 혼자 들으니 약간 기분이 애매한게..

위 사진은 일반 민초들이 애 낳으면 탯줄을 불로 사르는 장면 같네요.

 

 

애 우는 소리는 이방에서 나는것 같은데..

뭔가 애 낳기 전의 장면 같네요.

 

 

애 낳고 삼신상 받고..

미역국이 덜 퍼졌네..

 

 

이건 궁중에서 왕비가 알라 낳은 장면.

문 밖에는 어의가 대기하여 산모의 상태를 보고 있던 의녀가 대략의 내용을 전달하면 어의가 처방을 내리는 방식.

 

 

리얼한 왕비의 표정.

 

 

애매한 의녀의 표정.

'아 놓는게 저리 힘드나' 하는 표정이네요.

 

 

한양에서 왕비가 아이를 낳고 그 탯줄을 이곳 성주까지 운반하는 장면입니다.

약간 어이가 없다는 생각도 드네요.

 

 

수십명의 병사들이 수십일간 동원되어 머 만한 알라 탯줄을 옮기는 행사..

이 병사들 중에는 행사 동원 중 집에서 부인이 애를 낳는 곳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

 

 

태실 관리병이 있었네요.

이곳은 왕과 대군, 왕자들이 모두 있었으니 병사들이 상당히 많았을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태실 구조.

스님의 다마가 들어있는 사리함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맨 밑의 밝은 부분이 태가 들어있는 항아리.

 

 

이곳 현재의 지형을 모형으로 만든 것입니다.

 

 

공원은 예쁘게 조성이 되어 있어 따스한 봄에는 아이들 데리고 소풍을 와도 좋을것 같네요.

 

 

공원 맨 윗자리에는 선석사란 절이 있습니다.

종파가 따로 소속되어 있지 않는 사찰이네요.

 

 

특별히 볼것은 없는데 대웅전이 약간 고색스럽습니다.

경북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네요.

이전에는 이곳 태실을 관리하는 사찰로 지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역사는 유구하여 신라때 의상이 창건하였다고 되어 있네요.

위 사진은 선석사 전체 전경인데 이곳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네요.

약간 째리 보는듯한 눈빛.

절하고 돈 내나 안내나 보자...

 

 

절 뒷편에는 관셈석불 하나가 조성되어 있는데 메이드 인 그라인드.

 

 

날이 약간 밝아지면서 아래로 운무가 생기고 있네요. 

 

 

가운데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보이는 곳이 태실이 있는 봉우리.

 

 

태실과 선석사 구경을 마치고 곧장 산행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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