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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아이들과 함께 찾은 불국사와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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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치는 날..

곧 그치겠지 했던 날씨가 하루종일 우중충합니다.

독수리 삼형제를 데리고 경주 나들이, 박물관 구경을 갔는데 간 김에 불국사도 둘러봤네요.

다음에 어른이 되면 어딘지도 모를 그곳 아득한 추억의 편린들을 주워 모아 할부지와 함께한 경주 여행을 끼워 맞춰 보겠지요.

 

경주 불국사 위치 : 이곳

국립경주박물관 위치 : 이곳

일 시 : 2024년 10월 19일

 

 

 

경주는 너무 가까운 이름.

너무 쉽게 대하는 이름이 되다보니 오히려 자주 가 보지 못하는 곳.

 

 

불국사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바람이 엄청납니다.

비는 맞아도 될 정도로 몇낱씩 내리고.

 

 

불국사.

언제부터인가 무료입장.

 

 

옛날 만원짜리 지폐에 딱 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요.

앞쪽으로 보이는 돌계단이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인 안양문으로 올라가는 곳인데 국보로 지정이 된 연화교 칠보교입니다.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의 엄마인 연제부인이 절을 하나 짓고 싶다고 하여 공사를 시작했는데(서기 528년) 그 뒤 김대성이 대대적으로 공사를 하여 절을 크게 짓는 바람에 지금도 불국사는 김대성이 지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임진란 때 화마로 크게 손상이 되고 그 뒤 조선시대에는 거의 폐사지처럼 방치되다가 일제강점기 때 대략 복구가 되고 현재의 모습은 그 뒤 1970년대 초반에 대대적인 복구공사로 현재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불국사에는 국보가 6점이나 있고 국가 보물도 6점이나 있습니다.

이 석축도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구요.

 

 

청운교와 백운교.

이 돌계단은 자하문을 통하여 본전인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자하문에서 내려다본 풍경

 

 

 

 

 

자하문 옆에서 내려다본 풍경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큰 사진은 이곳 클릭.

 

 

불국사의 마스코트 다보탑.

이전 1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것이라 어느 탑보다도 친숙합니다.

국보 20호로 지정이 되어 있지요.

 

 

다보탑 옆에 있는 조금 밋밋한 석가탑.

이도 역시 국보로 지정이 되어 있구요.

독수리 3형제는 셋이 나란히 서서 정자세로 사진을 찍는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절의 주 수입원.

 

 

 

 

 

대웅전 뒤편에 있는 무설전에는 감은사, 황룡사, 분황사의 탑에서 나온 사리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다들 깨알만 합니다.

담이가 관심을 꽤 가지네요.

 

 

3명의 독수리, 각인각색

 

 

하지만 부처님 전 삼배를 할 때는 의젓합니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사리탑인데 강점기 때 일본넘들이 가져가서 동경 우에노공원에 세워 둔 것을 다시 되돌려 받아 이곳에 모셔두고 있습니다.

그 시절, 오직 정으로 두드려서 만든 돌인데 떡으로 빚은 것처럼 정교함이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시절..

변소.

 

 

죽은 고목이 꽃을 키우고 있네요.

 

 

한번 더 경내를 둘러보고 다음 코스로 이동..

 

 

국립경주박물관.

우리나라에서 중앙박물관 다음으로 규모가 큰 곳인데 신라천년의 문화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꼬맹이들하고 같이 구경하는 바람에 차분하게 천천히 익히지를 못했네요.

그래도 대략 두어 시간은 이곳에서 둘러봤습니다.

볼거리가 엄청나게 많아 다음에 개인적으로 조용하게 하루 더 둘러봐야겠습니다.

 

 

 

 

 

 

 

 

 

 

 

 

 

 

 

 

 

 

 

 

장신구들은 요즘 인사동에서 파는 것 보담 더 정교합니다.

 

 

요즘 금시세가 장난이 아닌데 예사로 보이지 않네요.ㅎ

 

 

 

 

 

 

 

 

 

 

 

 

 

 

문화재 복원하는 기술이 최고의 난이도가 있다고 하지요.

 

 

경주 천마총에서 발굴된 금관.

 

 

 

 

 

 

 

 

 

 

 

 

 

 

 

 

 

 

 

 

경주를 대표하는 또 다른 얼굴.

얼굴모양 수막새 기와. 안동하회탈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강점기 때 영묘사 터에서 출토가 되었는데 당시 어느 일본인이 수집하여 가져가 있다가 1972년 우리나라에 기증한 것입니다.

제가 강점기 일본인은 무조건 넘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 사람은 그나마 양반짓을 하여 넘자를 붙이지 않았네요.

 

 

 

 

 

 

 

 

 

 

 

 

 

 

양반다리를 하여 다리를 겹쳐 올려놓으면 가부좌.

이건 한쪽만 가부좌를 했으니 반가부좌. 금으로 맥끼를 입힌 동조각이니 금동이고 깊은 사색에 잠겼으니 사유가 되어 제목이 금동반가사유상이란 이름으로 붙여집니다.

 

 

 

 

 

 

 

 

 

 

 

 

 

 

황룡사9층목탑의 조각품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목탑인데 높이가 80m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에 이 탑에 현재까지 존재했다면 지구 전체에서 최고의 보물 목록 1호가 되었겠지요.

 

 

바깥에 있는 에밀레종.

공식적인 이름은 성덕대왕신종인데 대개 에밀레종으로 표현합니다.

국보로 지정이 되어 있고 전근대 시기에 만들어진 종 중에서 가장 큰 종입니다.

전설이 전해져서 종 이름이 에밀레종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전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혜공왕이 자신의 할아버지인 성덕대왕신종을 만들 때 종을 만들기 위한 돈을 시주받았는데, 시주하러 다니던 스님이 들른 어떤 한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 집에서는 과부 아낙이 아기와 같이 있었는데 '마음 같아서는 시주하고 싶지만 있는 건 갓난아기뿐이네요'라고 아기라도 시주받아 가겠냐는 투로 말했다.

스님은 이 말을 듣고 다른 곳으로 떠나 열심히 시주를 받아 종 주조에 보탰다.

 

그런데 종이 도무지 완성되질 않아 점을 쳐 보니 '받아올 시주를 받아오지 않았다'라는 게 아닌가? 살펴보니 저 아기를 시주하겠다던 집 밖에 안 남기에 그 아이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스님은 아이를 시주한다던 그 집을 찾아가 여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움 속에 결국 아이를 빼앗듯이 강제로 데려왔고 울음을 삼키며 아이를 쇳물에 던진 뒤 종은 무사히 완성되었다. 

이후 종은 어미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소리처럼 에미일레라('어미의 탓이다'라고 원망한다는 해석도 있다.)하고 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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