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아버님께서 펼쳐 놓으셨던..
간조날 풍경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월급날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는 간조날이라고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처럼 한 달에 한 번 주는 월급이 아닌 보름 간조로..^^
누런 봉투에서 돈을 꺼내신 후 달력 뒷장에 숫자를 일일이 기재를 하셨습니다.
쌀 팔고, 반찬 값 얼마..그리고 제 학비 얼마.. 이런 식으로 ..
어린 제 눈에도 비친 아버님의 살림살이는 정말 빈틈이 없었습니다.
간조날 저녁식사는 평소와 달랐습니다.
김치찌개에는 돼지고기도 들어가고, 상 위에는 아버님 반주용 소주 한 병도 ^^
그 당시 쌀을 사는 걸 왜 쌀 판다고 했는지..?
그 모순된 표현이 궁금하여 자료를 찾아보니...
쌀을 판다는 것은..
쌀이 먹고 살 만큼 있어서, 남아서 팔 수 있는 집안들에게만 가능했기에
쌀을 산다는 말대신 판다는 말을 하면,
그 집안의 조상들이 그 말을 듣고 기뻐하신다고 믿었다는게 유래라고 나옵니다.
..
너무 빈틈이 없는 아버님의 살림살이로 ..
힘드셨던 건 어머님 이셨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뇌신(명랑) 중독이셨습니다.
약 값 부족으로 어린 저에게 하소연을 하셨을 정도였으니..
아버님이 돌아 가시고 한참 후에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그나마... 그런 아버지 때문에 보릿고개에도 쌀 꾸러 다닌 적은 없으시다고...
..
저는 군 제대 후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 처럼 살지는 않을거야..라고..
너무 어머님을 힘들게 하셨던 아버님이 떠 올라서..
봄이면 뚝섬까지 걸어 가셔서 각종 나물을 뜯어다가 새 시장에서 파셨고..
주인 집 굿판이 열리는 날이면, 새벽부터 밤 늦게 까지 부엌에서 일을 하시고 난 후에
약간의 돈과 밥 그리고 반찬, 떡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어린 제 눈에도 그런 어머니가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
허나....
이제 철이 좀 든 척 하는 나이가 되고보니 유년시절 아버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아끼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시절이였지만,
아버지의 양 어깨에 걸려던 그 비곤했던 시절의 애환이...
요즘 들어서 가끔이지만,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되돌아 봄을 통해서 어려운 시대를 걸어 가셨던..
저에게는 너무도 그리운 아버님의 뒷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첫 직장에서 첫 월급을 누우런 월급 봉투 명세서를 받은 세대이군요 ^^
그나저나 요즘 들어서..
제가 저에게 월급을 준지가 언제인지...기억이 안 납니다...^^
누우런 월급 명세서가 받고 싶은 요즘입니다...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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