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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베일속의 신비한 절터 미륵대원지와 석조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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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쯤으로 기억되는데 겨울 월악을 설산으로 산행하고 하산 후 식사라도 할 겸 이곳 미륵대원지에 들렸었는데 그때 본 석조여래입상의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라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몸에는 까만 때가 묻어 있었지만 얼굴만은 새하얗게 광채가 빛나고 있어 놀라웠답니다.

그때의 돌부처가 늘 그리웠구요.

그 뒤 어느 날밤 꿈에까지 그 돌부처가 나타나 기어이 한번 가 봐야지 하고 검색을 하니 보수 수리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2014년부터 보수가 시작 되었구요.

 

곧 끝날 것 같던 보수공사는 이어지고 이어져 2023년인 현재까지도 마무리되지 않고 있답니다.

장장 9년째입니다.

안내판에는 올해 11월에 마무리된다고 적혀 있는데 전혀 믿음이 생기지 않네요.

 

그동안 충주시청에도 몇 번이나 전화를 해서 별것도 아닌 것 같은 공사가 왜 엿가락처럼 길어지는지 물어도 명쾌한 답은 없구요.  이 귀중한 유물의 보수 공사를 문화재청에서 시행을 해야 하는데 지자체서 추진하는 모양입니다.

다행히 그동안 석조여래입상을 가려 두었던 가림막을 얼마전 치워 놓아 돌부처님은 대면할 수 있게 해 두었네요.

 

충주 수안보 미륵리에는 미륵대원(彌勒大院)이란 절이 있었는데 이 존재가 알려진 것은 불과 반세기 전인 1976년입니다.

널찍한 빈 논밭의 공터에 있던 집을 옮기는 과정에서 석조물들이 발견되면서 1000년 역사가 밝혀지게 된 것이구요.

발굴 당시, ‘明昌三年金堂改蓋瓦(명창삼년김당개개와)’, ‘彌勒堂(미륵당)’, ‘彌勒堂寺(미륵당사)’, ‘院主(원주)’ 등의 명문와(銘文瓦)가 출토되어 미륵을 모시는 사찰이자 원(院)을 겸하는 절집으로서 1192년(고려 명종 22) 금당의 기와를 새로 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는 충주미륵대원지(忠州彌勒大院址)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미륵대원사(彌勒大院寺)라고 하지 않고 미륵대원(彌勒大院)이라고 하는 건 이곳이 절집 겸 고갯길을 넘나들던 이들의 편의를 제공하던 곳이라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나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을 향하고 있는 절터이구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에 신라를 바칠 때 그의 아들 마의태자는 극구 반대를 했는데 결국은 신라가 망해 버리자 마의태자는 여동생 덕주공주와 함께 금강산을 길을 떠나는데 가는 도중 어느 날 꿈에 나타난 관음보살이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큰 터가 있을 것이고 그곳에 석불을 세우고,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이루면 억조창생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을 것이라는 주문을 합니다.

 

마의 태자는 월악산 자락 포암산 아래 석불을 조성하고 절을 세우니 지금의 미륵대원지이고, 누이 덕주공주는 미륵대원지와 마주 보는 곳에 마애불을 조성했으니 그곳이 월악산 덕주사입니다.

(덕주사에 관한 내용 : 이곳)

그 뒤 덕주공주는 출가하여 불자가 되었으나 오빠 마의태자는 나라를 찾겠다며 결국 금강산으로 떠났구요.

 

 

관련 포스트 : 포암산과 만수산 능선에서 조망되는 연둣빛 동양화

 

 

 

미륵대원지(彌勒大院址)는 고려전기에 만들어진 입석불을 안치한 석굴을 주불전으로 하는 사찰터로 여겨집니다.

현재 도랑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륵세계사(彌勒世界寺)라고 불리는 조계종 소속 사찰이 들어서 있는데 미륵대원지와 미륵세계사는 별개로 여겨져야 하는데 같이 붙어 있으니 미륵대원지가 미륵세계사에 포함되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네요.

 

 

미륵세계사(약칭 : 미륵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들어 갑니다.

화장실이 바로 앞에 보이는데 16m라고 친절하게 적혀있는 안내판이 인상적입니다.

 

 

미륵대원지의 주불전이 있던 입석불 전경입니다.

상당히 널찍하게 보여 지구요.

 

 

이쪽은 도랑 건너 미륵세계사 절집 쪽입니다.

작은 도랑인 데다 다리로 연결이 되어 있어 쉽사리 왕래가 가능합니다.

이쪽을 서원이라 하고 석불이 있는 쪽을 동원이라고 합니다.

 

 

미륵세계사에는 아기자기한 소품 불교장식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구요.

 

 

거북바위라고 하는 커다란 바위 위에 놓여 있는 공깃돌.

고구려 온달장군이 신라와 전투를 위해 이곳에 머물 때 가지고 놀았던 것이라 하는데 직경이 1m 정도 됩니다.

이걸 어떻게 가지고 놀았는지 상당히 궁금..

 

 

앞에는 이런 불두가 놓여 있네요.

할미꽃이 피고 져서 수염꽃을 피우고 있구요.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공깃돌.

 

 

미륵대원지 풍경

석등과 5층석탑, 그리고 입석불이 같아 보여 집니다.

 

 

특별한 모양의 석등

입석불 앞에도 석등이 있는데 그건 흔히 보는 형태이지만 이건 특이하게 생긴 석등입니다.

사각형 석등으로서 흔히 절집에서 보는 전형적인 석등 형태를 완전히 벗어나 있습니다.

고려 초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여지는데 상단부 사각 받침대 위의 조각들이 사라진 게 상당히 아쉽네요.

제 눈에는 아주 특별하게 보여지는데 지방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는 게 의외입니다. 

 

 

뜸을 천천히 들이다가 이제 본격적인 입석불을 만나는 차례입니다.

입석불 앞의 석등은 여느 절집에서 자주 본 형태라 그다지 눈에 차지는 않는데 그래도 균형이 잘 잡힌 8각 석등으로서 이도 역시 지방문화재로 등재가 되어 있습니다.

 

 

석등의 가늠자에 맞춰서 본 석조여래입상불

 

 

보수 중에 그려논 얼굴의 마스카라가 너무 보기 싫네유.

 

 

석조여래입상불

공식 명칭은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忠州 彌勒里 石造如來立像)입니다.

사람의 모습과 실제 대비를 하면 상반신이 긴 가분수 형태의 부처이지만 그냥 한눈에 보면 상당히 안정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곳 미륵대원사의 주존불로서 원래는 지붕이 있는 석굴 형태로 된 건물 안에 안치가 되어 있었답니다.

전체 높이가 10.6m로서 모두 5개의 돌조각을 다듬어 쌓아 만들어졌는데 그 위에다 갓바위 부처같이 판석을 얹어 모자를 만들었네요.

얼굴 외에는 사실성이 많이 떨어지게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덕주공주가 덕주사의 바위에 불상을 새겨 남쪽으로 보게 만들었고 이 돌부처는 덕주사 방향으로 북쪽을 보고 있습니다.

국가 보물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근데 오늘 보니 옛날 본 그 부처와는 너무나 차이가 많습니다.

지금은 보수를 한다고 그랬는지 몸통도 모두 새것처럼 닦아 두었고 얼굴에 마스카라 화장이랑 주변도 이상하게 정리를 해 두어 이전에 제가 이 부처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네요.

겨울 눈이 많이 쌓여 있는 계절에 몸은 때가 묻어 많이 더러웠는데 얼굴만은 너무나 하얗게 빛나보여서 그때 스님께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얼굴을 자주 닦아 주나요?'

그때 스님의 답변은 전혀 그렇지 않고 그냥 놔두어도 얼굴만은 절대 때가 묻지 않는다고 했답니다.

어떤 자료를 보니 수많은 시간속에서도 얼굴만 유달리 하얗게 되어 변화지 않고 있는건 채광이나 안개등 여러가지 과학적 원인을 제시하고 있는데 막상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하구요.(아래 사진 참고)

 

 

문화재청 웹에서 가져온 사진인데 오래전 제가 본 부처님은 아마도 이 모습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얼굴만 전혀 티 묻지 않고 하얗게 보이는 게 신기하였답니다.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는 5층 석탑입니다.

돌지붕에 몸통에 비해 아주 좁아 예쁘게 보이지는 않는 석탑입니다.

탑 맨 위에 안테나처럼 보이는 찰주가 눈에 뜨입니다.

빼닥하네요.

근데 찰주가 많이 남아 있는 걸로 봐서는 저 위에 둥글둥글한 돌들이 몇 개 더 올려져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공사를 하고 있는 울타리 안쪽으로 한발 들어가서 본 석조여래입상입니다.

석등 앞이라 온전히 돌부처가 다 보이게 됩니다.

ㄷ자 형으로 된 석실 위에 목재 지붕을 덮어서 석굴 형태의 건축물로 여겨 지구요.

주변에 지저분하게 놓여져 있는 가림막이나 비계등 공사장비가 참 보기 좋지 않네요.

 

 

절 입구와 가까운 곳에 돌비석을 세우는 받힘대인 거북이가 있답니다.

귀부라고 하지요.

길이 605cm, 높이 180cm로 우리나라 최대의 거북이 받침대입니다.

귀부 등에 세워졌을 비석은 도저히 찾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걸 찾아야 100점이 되는데...

거북이 등에 목 있는 쪽으로 살금살금 기어 올라가는 아기 거북이 두 마리를 찾았다면 눈썰미 10단.

 

 

미륵대원지 입구에는 깨어진 당간지주가 바닥에 쓰러져 있습니다.

당간 지주는 절집의 깃발을 매다는 장대를 고정하기 위한 것으로 사찰의 입구에 세워져서 신성한 지역 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당간지주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는데 당간지주의 크기로 봐서 미륵대원지의 규모도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구요.

 

 

개울 건너 미륵세계사란 사찰입니다.

 

 

가건물 비슷하게 지어진 대웅전 앞에 목단이 화려하게 피었네요.

 

 

올해 초파일도 대체공휴일 포함 3일 연휴..

어떤 분들, 5월달 살판  났네유.

 

 

현판은 대웅전인데 주불을 아미타불로 하고 있네요.

호위불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불이 나란히 있습니다.

근데 뜬금없이 데려온 자식마냥 한쪽 옆에 지장보살도 모셔 두고 있네유.

아주 특이한 구성(?)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의 아미타불은 극락을 다스리는 부처로서 대개 무량수전이나 극락전등에 모시게 됩니다.

지장보살은 염라대왕이 있는 명부전의 최고 오야로서 사람이 죽으믄 지옥으로 보낼까 천당으로 보낼까를 결정하는 마지막 결재권자이지유.

 

 

그리 넓지 않는 절집 이곳저곳에 다양한 불재들을 설치해 두었습니다.

약간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경계를 이루는 도랑 안에도 바깥에도 돌탑들을 정성스럽게 쌓아 두었네요.

 

 

예(禮)를 중시하는 공자님께서 유식한 말씀으로,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행하지도 말라.)라 하셨는데, 이걸 일본넘들이 원숭이 세 마리로 조각상을 만들어 히트를 치는 바람에 공자와 별 관계가 없는 절집에도 자주 차용되는 현상이 생기네요.

 

 

 

 

 

미륵대원지 원터

미륵대원지 석조여래입상 바로 옆에 있습니다.

원터라는 말은 원래의 터라는 말이 아니고 원(院)이 있던 자리라는 뜻입니다.

하늘재 고개를 넘나들던 이들이 머물고 쉬며 숙식을 해결했던 곳이 아니었을까 짐작이 되네요.

 

 

아주 오랜만에 찾는 곳이라 이곳저곳 다시 한번 발길을 남기고 되돌아 나옵니다.

 

 

입상이 보이는 절 입구에 서서 크게 한번 더 둘러보고요.

 클릭하면 크게 보여 집니다. 

 

 

연등 위로 보이는 돌부처님이 손을 들어서 배웅을 해 줍니다.

올해 말에 보수가 완전히 마무리 된다고 하는데 눈이 많이 내리면 그때 다시 한번 와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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