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어느 산행기에서 이 공개바위 사진을 처음 접하고는 이것은 사진을 찍을때 카메라를 약간 기울러서 찍었구나 하고 지레 짐작하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저 자세로 바위가 얹혀 서 있을수 없을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뒤 기회 될때마다 한번 가봐야지 하며 벼루고 있었는데 눈이 쌓인 겨울과 녹음이 짙은 여름에는 배경이 좋지 않을것 같아 미루다가 눈도 다 녹은 지금이 가장 좋을 것 같아 베낭을 꾸렸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하여 공개 바위를 본 순간 나는 "아 - !" 하고 탄성을 지를수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지리산 자락 꼭꼭 숨겨진 산 속에서 피사의 사탑을 만난 것이다.
최초 출발시에는 약간 빡신 별 네개짜리 산행을 하고 하산길에 이 공개바위를 들릴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오봉마을 입구를 승용차로 하늘로 솟구치듯이 오르며 이거 뭔가 좀 꼬이겠다 하는 생각을 하였다.
대여섯 가구가 마을 전부인 오봉마을 남의 집 마당에 주차를 하고 등산화 끈을 조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인분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어디 가실려고 오셨소?"
이런저런 코스로 둘러보고 하산길에 공개바위에 들린다고 하니,
"여기서는 찾아가기가 힘들것이요. 이쪽에선 길도 희미할 것인데...."
대강 위치만 짐작하고 가지고 있는 지도와 산신령님을 믿는 수 밖에 없다.
어디 가게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술 한병도 챙겨 오지 않아 다시 이장집을 물어서 찾아갔다. 이장은 일 나가고 없고 집에는 할머니와 이장 부인이 있다. 여차 사정 이야기를 하고 술을 한병 구해서 산으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상내봉 능선과 공개바위 주변의 지리산 남부를 하루 종일 훑고 다녔는데도 정말 사람 한명 만나지 못하였다. 종일 남부 지리산을 전세 낸듯한 기분으로 나홀로 휘젓고 다닌 것이었다.
말한대로 얼마의 능선을 오르자 길이 묻히고 없어 진다.
수북히 쌓인 낙엽이 있던 길도 묻어 버리니 대강 짐작으로 능선을 타고 오른다. 봄 햇살이 위옷을 벗게 만든다. 애초 계획을 약간 수정하여 공개바위를 먼저 찾아 보기로 하였다.
능선을 타고 올라 베틀재에서 다시 오른편 하산길로 꾸준히 내려간다.
이곳에는 다행히 길이 반듯하게 나 있어 내 달리듯이 한참을 내려가니 오른편에 리본이 몇개 보인다. 숲을 휘저어며 잠시 아래쪽으로 향하니 저 아랫쪽에 공개바위가 보인다. 한쪽으로는 계곡이 접하여 여름에는 물길이 될 듯하고 한쪽으로는 동쪽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아까 이장집에서 사온 술과, 베낭을 뒤져 간식 조각을 꺼내놓고 간단한 제를 지낸다. 산신령님과의 유대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편의 방편이다.
숨을 돌리고 자세히 보니 정말 장관이다.
이태리 피사에 있는 사탑이 5'정도 기울어졌다고 난리법석인데 이것은 집채만한 바위가 거의 30'의 기울기로 버티고 있으니 피사의 사탑이 보았다면 그자리에서 바로 무릅 꿇고 형님 해야할 판이다.
높이 12.7m 둘레가 12.3m 라 하니 그 크기도 어마어마 하다.
사진으로 봐서 크기를 짐작할 수 없으니 셀프타이머로 부리나케 뛰어 가서 찍은 두가와 비교하여 보자.
작은 키가 아닌 두가의 모습도 여기서는 고목나무의 매미같다. 역광을 받아 실루엣으로 보이는 공개바위의 모습이 두가의 눈에는 장대한 남자의 심볼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무슨 불손한 생각인가 하고 자위하며 다시 뒤돌아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다.
공개 바위의 모습은 양쪽에서 보는모습이 다른데 한쪽에서는 4층으로 보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5층으로 보인다.
공개 바위 옆에는 산청군에서 이 돌탑이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세운 안내 표시판이 있다.
등산로 안내판 하나 보지 못한 오늘 하루 산행에서 유일하게 본 인공 시설물이다.
4층으로 보이는 곳에서 보는 모습이 공기돌을 쌓은 모습과 참으로 비슷하다. 대강 아래 위로 수직선을 그어 보니 무게 중심이 앞으로 한참이나 나와 있는데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모습이 신기할 뿐이다. 오래전 옛날 땅속에 묻혀 있다가 풍화로 주위 흙이 파여 나가고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오래전에 땅속에서 저렇게 큰 바위가 얹혀 존재하였다는 자체부터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전설처럼 지리산 마고 할미가 산신령 할배와 막간을 이용하여 공기놀이 하다가 산신령님이 볼일이 생겨 자리를 떠고 혼자 심심하고 무료해서 대강 삐딱빼닥 쌓아 놓고 점심 먹어러 가서 깜빡 잊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용하다 못해 너무나 적막한 산중에 우뚝하니 서 있는 돌탑의 위세는 넘어지지 말고 현실에 잘 부대끼며 살라는 마고 할미의 충고인지 모를 일이다.
대강 공개바위 돌탑을 이리저리 둘러 보고 있으니 몇가지 특이한 사항이 눈에 들어 온다.
1. 먼저 공개바위의 포개진 상태가 매우 위태롭다는 것이다. 5단으로 보이는 곳에서 보면 밑에서 2단과 3단 사이의 바위가 앞쪽에는 붙어 있지만 좌측의 뒷쪽 부근에는 아래위가 떠 있는 상태였다.(아래 사진의 화살표 방향)
그러니까 더 위의 있는 바위의 무게가 앞쪽으로 향하여져 있고 아래 기단은 불안정하며, 아래 위 바위의 틈이 사이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매우 불안정한 모습이다. 그리고 화살표 아래에 버티고 있는 바위들도 어마어마한 하중으로 바위가 약간씩 부서지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
2. 전체적으로 붕괴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양 옆에서는 보이지 않는데 앞쪽에서 보면 맨 위에 있는 바위의 바로 밑에 있는 바위 좌측이 완전히 갈라져서 어느때 아래로 굴러 떨어질지 모를 정도로 위태하게 붙어 있는 상황이다. 전체적인 돌탑에서 가장 위태한 부분인것 같다.
4. 공개바위 뒷쪽 기단 부분 모서리를 보면 커다란 나무 두그루를 베어낸 자리가 있다. 나무 그루터기는 아직 기단의 바위와 공개바위의 사이에 꽂혀 있는 상태이다. 아마 공개바위 틈새에 자라고 있는 것을 조망을 위하여 베어 버린듯 하다. 문제는 이 나무 뿌리가 언젠가는 썩는다는데 있다.
나무 뿌리가 썩어 버리면, 기단과 바위사이에 유격이 생길것이고 이는 공개바위의 붕괴로 이어질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나무를 그대로 놔두어도 나무가 자라 뿌리가 굵어지면 마찬가지 일 것이다.
썩어 들어갈 나무 뿌리를 대신할 처방을 하여야 할 것 같다.
5. 공개바위 상태가 안전시설이나 보호시설이 전무한 상태이고 또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어 이대로 방치 하다가는 자칫 붕괴의 위험도 있을 수 있다.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하여 관리하는 지자체에서는 이것을 이대로 마냥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를 불러 자세한 진단을 받고 붕괴를 막을 방도를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희귀한 바위가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이곳까지의 진입로를 자세히 안내한다면 그 어느 볼거리보다 더 흥미를 가지는 유명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공개 바위를 둘러 보고 아까 제 지낸 술을 혼자서 원샷으로 두어잔 들이키니 갑자기 돌아보지 못한 봄이 물씬 코 앞으로 다가온다.
상내봉 능선 자락 그늘에는 아직도 잔설이 곰보 자국처럼 남아 있으나 이미 그것은 詩가 될수 없고 마른 잎 끝에 올라오는 연한 숨소리가 완연한 봄을 만끽하게 한다. 공개바위 처마밑의 4층 바위위에 동쪽을 보며 자라고 있는 키작은 소나무 한그루를 보고 있다. 저 바위에서 무얼 얻어 먹어려고 저곳까지 올라가 있는 것인가?
황사가 물밀듯이 몰려 올것이란 어제 예보가 있었는데 오늘 이곳으로 오면서 일기예보를 들으니 황사가 아주 빠른 속도로 지나가 버렸다고 한다. 황사가 아주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고 예보하는 그 통보관의 속 마음은 얼마나 지레 안타까울까 생각하니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또 아까 같이 햇살이 비치는 쪽에서 타이머를 설정하여 벼락같이 뛰어가서 사진 한장 찍고 공개바위 마고할미와 헤어진다.
다시 반나절을 산에서 보내고 하산하여 돌아 오는 길에 화엄사 말사로 세명의 스님이 지키는 화림사를 잠시 둘러 보았다. 절에는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고 오직 나 혼자 어슬렁거리며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나가려는 길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젊은 스님 한분이 나타나 합장을 한다.
인사를 하고 대략 몇가지 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져 나오는데 되돌아 들어가는 젊은 스님의 발걸음이 약간의 갈짓자 걸음의 요사이 젊은 얘들 걸음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옆으로 고개를 돌려 입을 오무리더니 잇빨사이로 침을 칙 갈긴다.
어쩌면 젊은 스님도 신세대의 세속 풍습을 일파하는 모양이다..하는 생각으로 픽 웃음이 난다.
아름다운 오봉골의 계곡을 따라 내려 오니 참으로 신선이 노닐만 하다는 생각이 절로든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잠시,
이 골짜기에서 57년 전인 1951년 2월 7일 음력 설 명절 뒷날 일어났던 엄청난 사건을 기억하지 않을수 없다.
이름하여 산청, 함양 양민학살 사건...
국군 제 11사단 9연대 3대대가 주축이 되어 1951년 2월 7일(음력 1월 2일)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의 명목으로 산청군 금서면, 함양군 휴천면과 유림면 일원에서 양민 705명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학살 현장은 금서면의 가현,방곡, 휴천면의 점촌, 유림면의 서주마을 등 4개 지역이고 관련 피해 마을은 앞 4개 마을 외에 자혜, 주상, 화계, 손곡, 화촌이 포함된다.
이 사건은 우리가 잘 모르고 있지만 이보다 이틀 뒤에 같은 작전으로 거창 신원면에서 자행된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은 알고 계신 분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다행히 이 골짜기에는 이분들은 추모하는 커다란 합동 묘역과 위령탑이 건립되어 그나마 억울한 영혼들을 달래주고 있었다.
공개 바위 찾아가는 길 :
대전-통영 고속도로 생초IC에서 내려 100m 앞에서 좌회전하여 계속 직진. 이후 금서면 화계리에서 지리산 방향 좌회전하여 약 200m 진행 후 산청 함양 추모공원 표시판이 있는 곳에서 우회전 .. 이후 계속 진행하여 추모공원을 지나 화림사 가는 계곡의 다리(가현교)를 건너기 직전 공개바위 안내 표시판 있는 곳에서 우회전 하여 올라가면 고사리 농장이 있는데 그 근방에 주차하고 오르면 된다. 여기서 공개바위 까지는 약 4km이다.(아직까지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라 안내표시판이나 기타 등로등의 상태가 좋지 않으므로 사전에 충분히 파악하여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산행을 목적으로 한다면 자가 운전시에는 차를 방곡리 가현교 부근에 세우고 공개바위와 노장대 상내봉을 거쳐 오봉리로 하산하는 원점회귀하는 산행을 할 수 있다. 대략 별 세개짜리 8시간 정도 산행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외 오봉리 부근에 주차하고 공개바위를 보고 상내봉을 오르거나 아니면 곧장 내려와 계곡에 탁족을 하고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면 멋질거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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