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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강화도 전등사의 늦은 오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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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친척 조카 결혼식을 끝내고 사촌형님 내외와 함께 강화도 전등사(傳燈寺)를 찾았습니다.
서울에 거주하고 형님 내외분은 특별하고 호젓한 곳이었을지 모르지만 산에 다니면서 지겹게 봐 오는 풍경들이기에 뭐 그리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먼 곳에서 올라 온 저희를 위하여 일박이일동안 정성으로 챙겨 주는 성의에 '멋지다', '좋다'는 말을 헤프게 사용하면서 몇 둘러 봤습니다.

찾아간 시간이 오후 늦은 시간이라 곧 어둑해져 그리 오래 둘러 보지는 못하고 잠시 경내 이곳저곳을 산보하는 기분으로 한바퀴 돌아 봤습니다. 전등사는 자칭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라 하는데 그 역사가 고구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구려 소수림왕(서기 381년)에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이 되었다고 하니 1600년이 넘는 역사가 되는 셈입니다. 이 시기가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파된 시기라 하는데 아마도 역사의 섬 강화도가 그 기점이 된 것 같습니다.

근데 아쉽게도 그 유구한 역사의 전등사이지만 그 시절의 건축물이나 유물은 남아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안동 봉정사의 극락전이구요. 1200~1300년대쯤에 지어진 건물이니 전등사 창건 이후 대략 600년이 지난 시기입니다. 그러니까 전등사 목조 건축물 하나가 만약에 아직까지 남아 있다면 정말 대단한 역사가 되는 셈입니다.


전등사의 창건주 아도화상이 고구려에서 신라로 내려가 그 시절 불교가 없던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고자 지은 절이 제 처가가 있는 구미 해평의 도리사인데 이게 신라 눌지왕, 서기 417년에 지어 졌으니 전등사와 함께 무지 오래된 사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절집 타이틀 싸움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더 붙이자면 아직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로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을 가장 오래된 나무집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1972년 이전이고 이 해에 봉정사 극락전을 보수 하면서 새로 발견된 상량문에 확실한 중수연대가 적혀 있어 무량수전의 타이틀을 한순간에 앗아간 것입니다.


다시 이야기를 강화도 전등사로 돌려 봅니다.
전등사는 삼랑성이라고도 하고 정족산성이라고도 하는 산성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데 절 집들 약간 왼쪽 뒷편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던 서고가 있는데 역사적으로 여러가지 난을 겪으면서도 정본 실록을 모두 지켜낸 곳이 이곳 전등사의 정족사고 뿐이라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실록을 돋보이게 한 것도 전등사의 자랑입니다.

전등사의 대웅전은 보물 178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전면 3칸 측면 3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전 건물이 소실되어 조선중기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묘한 것은 대웅전 지붕 모서리 아래에는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목각상이 있는데 이를 벌거벗은 여인으로 표현하여 나부상(裸婦像)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네 귀퉁이에 모두 자리하고 있는 이 나부상에 관한 전설 이야기를 전등사 홈페이지에서 발췌하여 소개 합니다.


"당시 나라에서 손꼽히는 도편수가 대웅보전 건축을 지휘하고 있었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온 그는 공사 도중 사하촌의 한 주막을 드나들며 그곳 주모와 눈이 맞았다.
사랑에 눈이 먼 도편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주모에게 모조리 건네주었다.
“어서 불사 끝내시구 살림 차려요.”
“좋소. 우리 그림 같은 집 한 채 짓고 오순도순 살아봅시다.”
도편수는 주모와 함께 살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대웅보전 불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사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그 주막으로 찾아가보니 여인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며칠 전에 야반도주를 했수. 찾을 생각일랑 아예 마시우.”
이웃집 여자가 말했다. 도편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여인에 대한 배반감과 분노 때문에 일손이 잡히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래도 도편수는 마음을 다잡고 대웅전 공사를 마무리했다.
공사가 끝나갈 무렵 대웅전의 처마 네 군데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받치는 조각이 만들어졌다."


전등사 위치



전등사 주차장에서 전등사 올라가는 길

대략 5분 정도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 됩니다.

요금 3,000원.

가을 초입인데도 아직까지 여름냄새가 폴폴 납니다.



전등사 입구

전등사에는 특이하게 일주문이나 불이문등이 없습니다.

그 대신 산성을 쌓으면서 만든 성문이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네요.

사진에 보이는 문이 남문입니다.



남문 통과



남문을 따라 연결이 되어 있는 성벽입니다.

성벽을 따라 난 둘레길도 보이네요.

옛날에는 토성으로 된 것이었다가 그 뒤 차츰 석벽으로 변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올라가는 길에 잠시...



이거 이름이 마니륜이던가.. 하여튼 빙빙 돌리면서 소원을 비는 것인데 맨입으로 돌리면 안되고 시주를 하고 나서 빙빙 돌려야 지대로 소원이 이뤄지는 장치.

뭔가 축(shift)이 나갔는지 누군가 무대뽀로 돌려 고장이 난 것인지 암튼 작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은행나무 앞에 잠자리 한마리가 내려 올때까지 그 자세로 앉아 있네요.



보호수가 몇 그루 있는데 이 은행나무는 그 연대가 너무 확씰하게 쓰여져 있네요.

2001년에 507년이 된 은행나무이니까 올해로 522년이 되었습니다.



수령에 대하여 조금 고찰을 해 봤습니다.

어떤 기록에 의하여 아마 작성된 것이 아닐까 짐작은 하는데...

그때 두살배기 묘목을 심은 것인지, 씨앗을 뿌린 것인지 아니면 지팡이를 꺼꾸로 꽂았는데 그게 싹이나서 나무가 된 것인지?

그러면 그 지팡이의 나이는 수령과 관계가 없는 것인지??



본당 마당으로 올라가는 아랫계단 오른편에 꽃무릇이 가득 합니다.

약간 철이 지나가고 있네요.



널찍한 절마당의 모습이 평온합니다.

여기도 역시 오래된 보호수 한그루가 위풍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무의 운치가 참 멋집니다.



오른편부터 대웅전 향로전 약사전 명부전인데 향로전은 다른 절집에서는 구경 못한 이름입니다.


위 사진은 클릭하면 파노라마의 큰 사진으로 구경할 수 있습니다.



종무소 있는쪽 풍경입니다.

입구에도 주차장이 있고 아랫편에도 절집 전용 주차장이 있는데 본당 마당에 차들이 올라와 있는 모습이 조금 거슬립니다.



대웅전과 주변 건물들의 조화가 대단합니다.

뒷편 산의 소나무가 정말 멋지구요.


위 사진은 클릭하면 파노라마의 큰 사진으로 구경할 수 있습니다.



대웅전



정면에서 본 대웅전

예민하게 보시면 각 모퉁이 처마밑의 나부상이 보여 집니다.

나부상 흉내를 낸 조각품이 사진 아랫쪽에 국화를 받들고 있습니다.

이건 스티로품으로 맹근 것이구요.



죽은 나무를 살리는 지혜..

요즘 이런 조각품들이 만하져서 보기 참 좋습니다.



뒷편 소나무들의 운치가 너~무 좋습니다.



이런 풍경을 보고 우리 선조들이 소나무를 그렇게 멋지게 그렸나 봅니다.



종무소 옆 약수 위에 있는 목조각품

역시 죽은 나무에 조각을 하였습니다.



종무소 옆에는 특이하게 은행 CD기가 자리하고 있네요.

돈 뽑아서 커피 사 마시라고 있는 건 아닐것 같구...??






전등사 본당 마당 한칸 아래 자리한 찻집

아주 고즈녁하게 꾸며져 있네요.














약간 인위적인 냄새가 풍기는 느티나무 연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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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를 구경하고 되돌아 나와 서울로 가기전에 바닷가 드라이브를 하였습니다.

썰물이 한정없이 빠져나가 거대한 뻘밭으로 바다가 변해 있네요.












멀리 인천대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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