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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김기창 화백의 여운을 찾아서 들린 청주 '운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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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부터 한번 가 보고 싶었던 운보의 자택을 다녀 왔습니다.
이곳을 '운보의 집'이라고 합니다.
운보(雲甫)는 김기창 화백의 호이구요.

우리나라 20세기 미술계에서 가장 커다란 족적을 남긴 운보의 집은 이곳 청주의 내수읍 형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래 어머니의 집인데 운보가 그의 부인과 사별 후 이곳에서 말년을 지낸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만원권 지폐의 세종대왕의 초상화가 바로 운보의 작품인데 옛날 실물의 사진이 전해지지 않던 임금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현재도 세종의 포준 영정으로 지정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운보가 자신의 얼굴과 비슷하게 그렸다고 하여 논란이 일기도 하였는데 대개의 화가는 인물을 그릴때 은연 중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게 그린다는 습성이 있어 아마도 이도 그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운보 김기창은 비운의 화가이기도 합니다.
8살때 그 시절 흔히 말하는 장질부사(장티푸스)를 앓아 귀가 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후 평생 청각장애로 살았는데 운보의 집 입구 커다란 돌비석에 이에 관한 안타까운 말 한마디가 적혀 있습니다.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것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듣지 못한다는 느낌도 까마득히 잊을 정도로 지금까지 담담하게 살아 왔습니다.
더구나 요즘같이 소음 공해가 심한 환경에서는 늙어 갈수록
조용한 속에서 내 예술에 정진 할수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생각도 듭니다.
다만, 이미 고인이 된 아내의 목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게 유감 스럽고
또 내 아이들과 친구들의 다정한 대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것이 한이라면 한(恨)이지요."

운보는 화가로 그 명성을 날렸지만 일생에서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는데 바로 친일행각입니다.
일본강점기 시절 일본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그림들을 다수 그렸는데 제 생각으로는 귀가 들리지 않았다는 것과 연관이 많았을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귀가 들리지 않음으로 인하여 남들의 감성이나 주위의 생각을 온전히 받아 들이지 못하여 사상이나 주체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그림에만 일념했을 것이라는 생각...

운보의 호는 원래 운포(雲圃)였었는데 해방 후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났다고 하여 口를 떼어내고 운보(雲甫)로 하였습니다.
바보산수화로 많이 알려진 운보의 말년 그림에서도 그의 내면을 읽어 봅니다.
그리고 늦게나마 자신의 친일행적에 대해 시인하고 사과하며 진심으로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2001년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15,000점의 작품이 남겨지고 있구요.
 

운보의 집은 운보가 71세 되던 1984년에 완공해 세상을 뜰때까지 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운보의 집은 입장료가 있습니다.

6,000원.

좀 쎈 편입니다.









내부로 2개의 중문이 있는데 아주 화려하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지만 기품이 있는 한옥집입니다. 



스산한 겨울이라 집 안도 그런 분위기인데 봄철이나 가을에 오면 아주 운치 있을듯한 곳입니다.

집 이곳저곳에 수석이나 분재가 많습니다.





















호피 침상..

호랭이 가죽을 깔고 한번 자 보고 싶다는 생각이...



거실인데 분위가가 아주 괜찮습니다.



지하 전시실로 내려가는 입구에 있는 사진.

지하에 전시된 '예수의 일생'을 감상하기 위하여 내려 갑니다.



김기창화백은 평생 화풍이 아주 다양하게 바꿘 화가이기도 한데 예수의 생애를 다룬 작품 30점을 그렸다는 것도 대단합니다.

특징이 있다면 예수와 등장인물들이 모두 한복차림이란 것..



예수의 탄생



예루살렘에 입성



예수와 열두제자의 '최후의 만찬'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전시장 내부






'악기'라는 제목의 수석인데 남한강에서 주웠다고 합니다.









추운 날씨에 지킴이견도 역활을 하지 못하고 지 하우스에 들어 가 있습니다.






운보의 집 바로 위에 있는 미술관 건물



커다란 수석 두 점이 있는데 왼편은 '양'이고 오른편은 '어린 양'입니다.



온보의 상이 있는 미술관 앞





서두에서 설명 했듯이 화가는 인물을 그릴때 은연 중 본인의 모습과 비슷하게 그린다고 합니다.

운보가 그린 세종대왕과 운보가 닮은 형태입니다. (이미지는 오마이뉴스에서 인용)



미술관 내부



운보의 명작 청산도(1976년 작)






전시작품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작품

(액자는 제 임의대로 만든 것입니다.)






바보산수화 ..









미술관에는 전시되어 있지 않지만 김기창화백의 대표작이기도 한 전복도.1934년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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