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티잔..
오래 전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이태의 자전적 소설 남부군, 그리고 이병주의 지리산을 읽으면서 파르티잔에 대하여 관심을 많이 가졌답니다. 그 중 가장 흥미롭게 읽은건 이병주의 지리산이구요.
파르티잔은 우리말로 빨치산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민족이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치뤄야 했던 숱한 상처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남도 북도 외면한 빨치산의 이야기는 서글프기조차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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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 빨치산 총책 이현상까지 제거되어 1955년 당국은 빨치산이 완전히 소탕되었다고 공표를 하였답니다.
그러나 이때까도 지리산에는 수십명의 빨치산이 활동을 하고 있었고 이 후 계속된 작전에서 거의 소탕이 되어 정부에서는 빨치산에 대응하여 더 이상 소모적인 전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 경찰서장의 재량으로 한마을에 두어명 정도 사찰경찰을 임명하여 마을과 주변을 감시하는 역활을 맡겼습니다.
전쟁이 끝난뒤 10년이 지난 시절, 빨치산에 대한 주민들의 피해도 전혀 없던 시기라 사찰경찰은 그야말로 놀고 돈 버는 업종.
이들 중 추성골(칠선계곡 마을) 입구에서 보초나 서고 막걸리나 얻어 마시던 문영만과 지동식이란 사찰경찰이 있었는데 어느날 마을 사람들한테 산에서 곰을 보았다는 제보를 받고 그야말로 곰사냥을 핑계로 심심해서 산에 올랐답니다.
사냥개 한마리를 대동하여 오른 곳은 선녀굴 근처..
갑자기 사냥개가 미친듯이 선녀굴로 달려가고 이어서 그곳에서 들리는 칼빈소총 소리 한 방.
곧이어 사냥개 소리는 멈추고..
곧바로 이쪽 문영만과 지동식의 대응사격으로 선녀굴에서 10여년을 숨어살던 3명의 빨치산 중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여 벼랑에서 떨어지는 걸 목격한 후 날이 어두워 철수를 하였답니다. 그날 사찰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이는 이은조.
니머지 두명이 시체를 은거하여 묻은 후 선녀굴을 나와 다시 1년을 도피하다가 결국 한명은 사살되고 마지막으로 한명은 살아서 체포가 되었는데 이가 바로 이땅의 마지막 파르티장(빨치산) 정순덕입니다.
이곳 함양 독바위를 오르는 산꾼들이 역사의 현장으로 꼭 찾아보는 선녀굴.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굴 옆 샘터에서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는 그곳에서 마지막 남은 3명의 빨치산은 이곳에서 십여년을 숨어 지냈답니다. 이들이 이곳에 기거가 가능했던 이유는 굴 옆에 샘터가 있었기 때문일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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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나기 1개월 전 1950년 5월 초.
지리산 자락 산청군의 깊숙한 마을인 내원리에서 나고 자란 18살 처녀 정순덕은 옆동네 성석조에게 시집을 가게 됩니다.
지지리도 가난하던 시절, 병이 걸려 소박맞고 돌아 온 정순덕의 언니를 대신하여 집안 입이라도 하나 덜까 하고 시집을 간 것이고 성석조 집에서는 일손 하나 더 생겼다고 맞은 것이라 그 시절엔 대수롭잖은 일이었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혼 1달 후 전쟁이 터지구요.
전쟁이 도데체 왜 일어났는지 그게 뭔지도 모르는 시골 벽촌 사람들.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군이 들어오면 환영을 하고 공산군이 들어와도 환영하는 시늉을 해야 했던 시절.
신혼의 성석조는 어리버리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못하다가 인민군이 이곳 산청을 점령 할 때 인민군에 협조하여 면사무소(인민위원회)에서 근무를 하였는데 그 뒤 전세가 기울어 인민군의 후퇴로 이어지고 이 후 갈 곳이 없어진 성석조는 인민군 패잔병을 따라 지리산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뒤 이곳 치안을 위해 들어 온 군경들은 빨갱이 성석조를 잡기 위해 정순덕을 매일같이 고문하게 되는데 이를 견디다 못해 그녀도 역시 남편을 찾아 지리산으로... 이념이나 사상이 뭔지도 모르는 정순덕의 머리에는 남편과 자기의 행복을 앗아간 군경만이 적이 되어 그 뒤 가장 악랄한 빨치산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빨치산의 공식 명칭은 조선인민 유격대 .. 우리나라 근대 역사에 지울래야 지울수 없는 이데올로기의 극단적인 대립이 지리산안에서 벌어집니다.
국군과 경찰은 빨치산들을 하나하나 소탕하는데 1952년 지리산 대성골의 토끼몰이식 전투에서 빨치산은 거의 괴멸하게 됩니다.
그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되는 빨치산과 군경의 대결은 결국 빨치산의 전멸로 끝나고 지리산에는 3명의 빨치산만 남게 되는데 이은조, 이홍희, 정순덕입니다.
이 삼인조는 그 뒤 빨치산이라기보담 강도로 변신하여 살아가기 급급한 형태로 지냈는데 전쟁이 끝난 10년도 더 지난 1063년 11월 18일, 이은조는 1년 전 진작에 사찰경찰(위의 설명)에 의하여 사살되고 남은 두명은 정순덕이 태어나고 자란 내원마을에 식량을 구하려 갔다가 이의 첩보를 입수한 경찰과 총격적끝에 이홍희는 사살되고 정순덕은 허벅지 관통상을 입어 체포되었습니다.
체포 당시의 정순덕.
마지막 빨치산이자 여자 빨치산으로 간혹 미화되어 표현되기도 하는 정순덕.
그는 그 뒤 총상을 입은 다리 하나를 절단하고 종신형으로 감옥에 살다가 21년 6개월의 형을 마치고 1985년 8.15 특사로 석방되어 미전향장기수들의 뒷바라지를 해 주다가 200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순덕이 지리산에서 가장 오래 은거했던 선녀굴...
결혼하고 남편과 지낸 시간은 불과 서너달..
나머지 20대 불같은 청춘을 거의 이곳 선녀굴에서 지내면서 사람도 변하고, 사상도 변하여 모든것이 짖밟혀버린 한 사람의 기구한 운명.
정순덕이 체포될 때 유일하게 지니고 있던 사진 한장. 언니 순점과 여동생 판남.
빨치산이기 이전에 그리움을 가진 한 인간이었다는...
그 선녀굴에 한번 가 보고 싶던 곳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책상 카렌다 윗 부분에 늘 기록되어 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사 다녀 오게 되었네요.
그러다 보니 생긴 현상이..
그동안 안내판도 잘 세워져 있었고 길도 반듯하게 되어 있던것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국립공원에서 비탐지역으로 설정을 하여 탐방을 막아두고 안내판을 모조리 제거 해 버렸답니다. 덕분에 탐방로는 길을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안내판이 없으니 헷갈리는건 부지기수. 참으로 어려운 산행을 한 하루가 되었답니다.
비탐지역 탐방에 대한 이해를 바라면서...
※ 정순덕과 빨치산에 관한 내용은 실제 전해지는 내용마다 차이가 있어 제 아는 내용 위주로 구성한 것입니다.
혹시 사실과 틀리는 곳이 있으면 확인 후 수정 하겠습니다.
산행코스 :
모전마을 - 견불사 - 송대마을 - 선녀굴 - 독바위 - 안락굴 - 와불산 - 벽송능선 - 송대마을
산행시간 : 6시간 (선녀굴 지나쳐 한참 올랐다가 다시 내려갔다 오는 바람에 시간 많이 소비, 길 찾는 시간 많이 걸림)
※ 송대마을 이 후 등산로가 거의 희미합니다. 눈 짐작으로 잘 찾아 가야 되구요. 간혹 보이는 리본을 참고하면 됩니다.
※ 전 구간 비탐으로서 안내판 전혀 없습니다. 지도 필히 지참해야 합니다.
※ 선녀굴은 솔봉능선 오르기 바로 전 오른편에 있는데 그냥 지나치기 쉬우므로 눈여겨 봐야 합니다.
※ 독바위 탐방 후 벽송능선길로 갈려면 독바위 입구 앞에서 왔던 길 반대쪽에 있는 등산로로 가야 됩니다.
※ 벽송능선 하산시 송대마을로 내려 갈려면 송대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적당한 지점에서 우측 비탈로 하산하면 됩니다. (헤치고 내려가야 됨,길 없음)
지리산에는 독바위라는 이름이 세 곳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함양독바위, 산청 유평의 산청(또는 진주)독바위, 그리고 하동 묵계리의 하동독바위.. 가 있습니다.
조선의 엘리트 함양군수 김종직 선생이 추석을 맞아 지리산을 한바퀴 둘러보고 쓴 책이 유두류록(遊頭流錄)인데 그곳 설명으로는 함양독바위를 독녀암(獨女巖)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일찍 출발, 함양 IC에서 내려 임천강 자락따라 오르다가 용유담다리를 건너 모전마을에 주차를 합니다.
가는 길에서 앞쪽으로 보이는 독바위 자락.
능선에서 아직 기운이 살아있는 아침달이 기웃이 내려다 보고 있네요.
멀리 용유담이 보입니다.
모전마을 높다란 담장아래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한기가 와 닿습니다.
오늘도 홀로 산행.
비탐으로 사람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인데다 등산로도 보나마나 부실할 것이고..
산돼지 일행을 만나거나 혹, 반가운(?) 반달곰을 만날수도 있다는 생각이..
약간 긴장을 하면서 유일한 무기인 스틱을 뽑아 챙겨들고 산으로 들어 갑니다.
송대마을까지는 지루한 포장도로를 따라 오릅니다.
송전마을 조금 못미쳐 견불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부처님을 볼 수 있는 절집인데...
이곳에서 산자락을 올려다보면 부처님이 누워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보이나요?
나중에 벽송능선으로 하산을 하면서 부처님 이마를 마구 밟고, 눈도 밟고, 코도 밟고... 무려한 짓을 하였답니다.
조금 당겨서 본 부처님 얼굴.
송대마을에서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빨치산루트탐방 안내소가 있는데 지금은 등산로가 비탐지역으로 바뀌는 바람에 폐쇄되었습니다.
송대마을에서 독바위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 됩니다.
등산로는 거의 희미하지만 간혹 보이는 리본이나 선등자의 발자국을 찾아 오르면 됩니다.
선녀골의 마을터.
지금은 돌담만 남아 있는데 한참이나 서서 시간을 거슬러 봤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고 부부가 저 돌담을 귀 맞추며 쌓는 정겨운 풍경도 보입니다.
이곳 저곳 흔적들로 봐서는 꽤 여러 가구가 살았던 것 같습니다.
차가운 바람과 맞선 마른 단풍이 그나마 길동무가 되어 눈 인사를 주고 받게 되네요.
아득한 높이에 달려있는 겨우살이.
선녀굴.
잠시 지도를 보지않고 무작정 오르다가 어느듯. 독바위 가까이..
아차! 지도를 보니 선녀굴을 한참이나 지나쳤습니다.
되돌아 한참이나 내려가서 솔봉능선과 갈림길에서 다시 조금 더 하산하니 ..
길 옆에 이유도 없이 리본이 몇 개 달려있어 올라 올 때 약간 의아했는데 그곳이 선녀굴이 있다는 표식이었네요.
선녀굴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바위벽에 총탄자국의 흔적도 찾아보고..
지리산 빨치산이 마지막으로 은거하며 저항했던 장소..
그리고 정순덕이가 거의 10년 가까이 머물렀던 은신처.
굴 입구에서 보면 탁 트인듯 보이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윗쪽으로 또 다른 작은 둥굴이 이어져 있습니다.
군경이 이 굴 앞에까지 와서도 이들을 발견 못한것이 이런 내부의 또 다른 은신처 덕분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특히 바로 옆에는 샘물이 있어 기거가 가능했구요.
이날 산행 중 대략 서너그루의 명품 소나무를 만났는데 이건 중품 정도로 10억 정도만 받겠습니다.ㅎ
처음으로 탁 트인 조망처를 만났습니다.
뒷편 지리산 자락 정상부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나머지 앞쪽과 양쪽 옆은 탁 트이는 조망처입니다.
김종직의 책에서는 이곳이 의론대라고 되어 있습니다.
멀리 반야봉이 운해에 갇혀있고 그 우측으로 서북능선이 이어집니다.
앞쪽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은 하산길인 벽송능선.
가장 멀리 서북능선이 병풍으로 쳐져 있고 그 우측 마지막으로 바래봉이 오똑 합니다.
중앙 바로 아래로는 솔봉능선. 그 우측으로는 벽송능선입니다.두 능선 사이로 올라 온 것이구요.
조금 더 위에서 제대로 조망 되는 독바위.
크기가 가늠이 안되지만 거대한 바위입니다.
바위를 꽉 잡고 자라는 소나무.
독바위가 가까워 졌습니다.
이전에는 철 사다리가 놓여져 있었다고 하는데 비탐 되는 바람에 사라지고 이런 빨래줄 몇 가닥이 걸려 있습니다.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되는데 그래도 매달려 올라 가 봤습니다.
서 있는쪽 뒷쪽은 아찔한 곳.
바위들에 서리가 앉아 맨들맨들하여 조금 위험합니다.
마침 저처럼 빨래줄에 매달려 올라 오신 일행분이 있어 카메라를 건네 인증샷 하나 찍었네요.
이날 산행 중 유일하게 만난 분들.
조금 후 같이 줄 잡고 내려 왔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제 흔적도 없이 ...
오도재 넘어가는 산인 삼봉산과 그 앞의 등구치도 조망 됩니다.
지리산 둘레길 중 가장 운치있는 3구간에서 조금 힘든 구간이기도 하지요.
좌측 서북능선에서 우측 왕산과 필봉산까지 대략 180˚ 파노라마입니다.
클릭하면 크게 보여 집니다.
왕산(중앙)과 필봉산(우측의 뾰쪽한 산)
반야봉을 구경 할려고 한참이나 기다려도 정상의 운무가 놓아주지 않네요.
정상에는 두곳의 절터가 있는데 고열암와 신열암입니다.
어느게 어느것인지는 모르지만 기와파편등이 보이네요.
독바위에서 되돌아나와 벽송능선자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찾지 못해 한참이나 헤매었습니다.
바로 넘어가는 길이 벽송능선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안락문.
좁다란 바위틈을 한참이나 빠져 나와야 합니다.
제법 멋진 곳인데 사진으로는 표현 할 방법이 없네요.
여기가 가장 높은 지역인듯한데 정상석이나 기타 표시가 없어 대략 지도로 확인합니다.
아마 1,210m 봉이 아닐까 예상이 됩니다.
동쪽이 살짝 트이는 조망처입니다.
멀리 웅석봉과 달뜨기능선.
웅석봉 자락에 숨어있던 빨치산들이 그곳으로 떠 오르는 달을 보고 고향이 그리워 눈물흘렸다던..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달뜨기능선.
말라버린 이파리들이지만 그나마 잿빛 산 풍경을 돋보이게 만드는 색깔이네요.
상내봉(와불산) 정상석.
무슨 이유로 꼬꾸라져 있는지..
하산길에서 바라 본 독바위
멀리 조그맣게 보입니다.
못찾겠다길래 조금 당겨서...
겨울 초입의 산자락 풍경
올라온 계곡.
지금 서 있는 곳이 부처님의 코 부근입니다.
견불사에서 올려다 본... 그 부처님의.
커다란 바위들로 되어 있구요.
부처님 코에서 건너다 본 독바위
조금 더 내려오니 조망처가 나오고..
이곳에는 싯가 100억 정도의 명품 소나무가 있습니다.
왕등재, 진주독바위로 이어지는 능선
한참을 벽송능선으로 하산을 하다가 대략 어느 지점을 잡아 송내마을로 내려 갔습니다.
길은 당연히 없구요.
한참을 잡목들을 헤집고 하산을 하니..
다시 송내마을 도착.
홍시가 새들의 간식거리가 되었네요.
반건조 곶감을 잔뜩 널어 둔 곳이 있어 사진을 찍고 있으니 맛이나 보라며 한개를 주는데 너무 달고 맛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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