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아는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아주 많은 신기한 내용들을 품고 있지만 두드러지게는 두가지의 불가사의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 방대한 수량을 만든 것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강화도에서 합천 해인사로 옮겨 온 과정입니다.
현재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는 대장경은 총 81,352판(장).
요즘으로 표현하믄 285톤으로서 8톤 트럭 35대분량입니다.
경부고속도를 타고 순식간에 오는 요즘이 아닌 아득한 옛날.....
고려 국책사업으로 시작된 대장경 작업은 1차로 77년에 걸쳐 만들어져 팔공산 부인사에 보관하다가 몽골군이 불을 질러 소실되고, 이후 2차로 고종때(조선 고종 아님) 16년에 걸쳐 만든 것이 현재의 대장경입니다.
경남 남해에서 만들어 강화도에 보관하다가 외척의 잦은 침입으로 안전한 곳으로 옮긴 곳이 해인사.
첩첩산중, 은둔의 지역에 자리한 해인사를 가장 적지로 여긴 것입니다.
강화도에서 서해와 남해를 거쳐 부산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해인사와 가장 가까운 포구인 고령의 개경포나루에서 하선을 하여 이곳부터 영남 일대의 승려들과 인근의 부녀자들이 총동원되어 경판을 머리에 하나씩 이고 해인사까지 운반을 하였다고 합니다. 장장 8개월에 걸쳐서...
이 시절 이곳 개경포에서 해인사까지 걸어서 보름정도 걸렸다고 하네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다가 잠시 멈추는듯 호수같은 넓이와 깊이가 있는 고령의 개포리.
그곳에 강을 끼고 걷는 너울길이 있답니다.
대장경을 내렸던 포구 이름을 따서 '개경포 너울길'이라는 이름입니다.
개포조방끝에 있는 개호정에서 출발하여 강을 따라 너울길을 걷고 되돌아 오는 길은 임도로 조성된 청룡산 MTB길로 되돌아 왔는데 제 생각에는 운치로 따지자면 돌아오는 코스인 MTB길이 더 멋졌습니다.
정말 걷기 아주 편하고 좋은 길입니다.
반면 개호정에서 부례관광지까지의 너울길은 땀이 약간 날만하면 강바람이 솔솔 불어서 새 봄 연두빛이 돋을 무렵에 걸으면 최고의 운치와 풍경이 함께할 것 같네요.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는건 예상 해야 합니다.
꽃샘추위 지나고 날씨가 봄처럼 포근한 하루.
미세먼지 가득하여 산행보다는 가까운 풍경을 즐기는 둘레길을 찾다가 만난 개경포너울길.
천천히 느긋하게 강바람 쏘이며 걸은 여유 가득한 하루였습니다.
새들도 모두 나와서 노래를 하고 꽃나비도 날아 다니는걸 보니 완연한 봄 같네요.
산행지 : 개경포너울길(고령 개진)
일 시 : 2021년, 2월, 20일.
산행코스 :
개포버스정류장 - 제방둑 - 개호정 - 개산포 전투전적지 - 어목정유허지 - 출렁다리 - 부례관광지 - 부래정- MTB(임도)길 - 청운각 전망대 - 개경포 전망대 - 개호정 - 버스정류장(원점회귀)
소요시간 : 4시간 30분
개경포 너울길은 2013년에 착공 2016년에 완공한 낙동강 생태 탐방로로서 강변 산기슭을 따라 친환경트레킹 로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개호정에서 부례정(부례관광지)까지 전체 4.2km로서 약간의 오르내림은 있지만 걷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구요.
한쪽에서 출발하여 되돌아와도 되고 산길구간으로 조성이 된 MTB길을 걸어서 원점회귀 해도 되는데 걷기는 MTB길이 휠씬 더 편합니다.
위지도의 빨강색 라인을 따라 걸었습니다.
우측 강변쪽의 길은 트레킹 로드이고 좌측 산쪽으로 난 길은 임도형식으로 MTB용 산길입니다.
MTB 산길이 걷기도 편하게 주변 운치도 완전 좋습니다.
산행코스 :
개포버스정류장 - 제방둑 - 개호정 - 개산포 전투전적지 - 어목정유허지 - 출렁다리 - 부례관광지 - 부래정 - MTB(임도)길 - 청운각 전망대 - 개경포 전망대 - 개호정 - 버스정류장(원점회귀)
개포리에 있는 성구양수장 인근에 주차를 하면 됩니다.
제방둑을 따라 걷다보면 멀리 개호정이 보입니다.
개호정 뒤편 산길이 트레킹 출발점입니다.
요즘 산길이나 들길에 지천인 도깨비바늘.
우리 어릴때 경상도 시골에서는 이걸 '도둑놈'이라고 불렀답니다.
손자 지율이와 산행을 하면서 도둑놈이라고 가르쳐 주었더니 그 뒤 이것만 보면 도둑놈이라고 하네요.
이것과 비슷한 도꼬마리라는게 있는데 그것에 착안하여 만든게 찍찍이라도 하더군요.
유럽의 아무개가 들에 다니다가 도꼬마리가 바지에 달라붙어 그걸 뗀다고 짜증 내다가 발명 했다고 하는데 그 뒤 돈 엄청나게 벌었다는...
마늘이 벌써 쑥 올라 왔습니다.
요즘은 갈수록 철이 빨라지는것 같구요.
어디선가 모내기를 했다는 소식도 들리더군요.
개호정
우측으로 난 산길로 올라가면 됩니다.
참으로 이해 못할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앞면에는 天盤座 (천반좌, 아마노 이와 구라)라고 적혀있고 뒷편에는 이 비석에 대한 내역이 적혀 있는데 더 애매합니다.
내용은,
"일본의 역사책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옛날 대가야시대였던 서기 174년경 高天原(고천원,오늘날의 고령지방)에 살던 天照大神(천조대신, 아마데라스오호미가미)의 손자 니니기노미코토가 일본구주 일향을 향해서 고천원을 떠날때 이 바위에서 배를 타고 출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야대학교 이경희 이사장이 세웠다고 적혀 있습니다.
도데체가 뭔 내용인지 집에와서 이리저리 공부를 하여보니,
말하자면 일본 시조가 하늘나라 살고 그 손자는 이곳 고령 살다가 일본으로 갔다는 ... 알쏭달쏭 이야기 같네요.
아래 내용을 먼저 보면 윗글이 믄 내용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됩니다.
홍윤기 문학박사의 글입니다.
가야땅 구지봉 봉우리. 그 봉우리로 느닷없이 하늘에서 자줏빛 노끈에 매달린 붉은 보자기가 내려왔다. 보자기에는 금으로 만든 상자가 들어있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황금알 6개가 들어 있었다. 알마다 옥동자가 태어났으니 그 중에 가장 잘생긴 아이가 자라나 ‘대가야’라는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 김수로왕이다. 나머지 다섯 아이도 각기 5가야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 가야의 개국신화다.
‘구지봉’신화와 ‘단군신화’를 뒤섞은 것이 ‘일본 개국신인 기노미코토’의 신화다. 하늘나라인 ‘고천원(高天原)’의 고목신(高木神, 다른 이름은 고황산존령(高皇産尊靈))이 외손자 니니기노미코토를 ‘보자기’에다 싸서 지상으로 내려 보냈다. 내려간 곳은 ‘구시후루’땅 ‘소호리’라는 봉우리였다.
하늘에서 내려올 때 니니기노미코토는 천조대신의 명을 받아 삼신기(옥·구리거울·검)를 지니고, 다섯 명의 신이 5부신을 거느리고 지상에 내렸다. 그 곳에서 니니기노미코토는 대산진견신(大山津見神)의 딸인 ‘코노하나사쿠야히메’(목화지좌구야비매(木花之佐久夜毘賣))를 만났다. 니니기노미코토는 코노하나사쿠야히메에게 한눈에 반했다. 그는 그녀와 그날 밤으로 정을 통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이튿날 즉시 배가 불러왔다.
천신의 자식을 단 하룻밤 사이에 임신했다는데서 니니기노미코토는 코노하나사쿠야히메를 의심했다. “아무리 천신의 자식이라지만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아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오? 혹시 그 애가 내 자식이 아닌 것이 아니요?”
그 말을 듣자 코노하나사쿠야히메는 대뜸 낯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몹시 수치스러운 생각에서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문이 달리지 않은 간단한 판잣집을 짓고는 맹세했다. “제가 가진 아기가 만약 다른 신의 자식이라면 불행하게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천신의 자식이면 아무 탈 없이 태어날 것이니 지켜보세요.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판잣집에다 불을 지르면서 그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불길이 솟구치는 속에서 아기들이 고고의 소리를 지르며 멀쩡하게 태어났다. 셋이었다. 맏이는 이름을 화명명(火明命), 둘째는 화진명(火進命), 셋째 화절언화화출견존(火折彦火火出見尊)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때 대나무 칼로 탯줄을 자르고 칼을 버리자 그 곳에는 순식간에 대나무들이 솟구쳐 대숲을 이루는 것이었다.
일본학자들이 보는 유사성의 증거들
이와 같은 고목신의 외손자 니니기노미코토의 천손강림 신화에 대해, 일본의 저명한 사학자이며 민족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가야신화’와 ‘단군신화’가 모체라고 지적했다. 토우쿄우대학의 저명한 인류학교수 이시다 에이이치로우(石田英一郞,1903~68)씨는 -고목신을 주신으로 하고 있는 ‘고천원신화’에 있어서 이 신화의 주요소중 하나는 천신인 고목신이 그의 손자를 하늘나라에서 산봉우리로 내려 보내서 지상을 통치시킨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종족의 조상신을 산 위로 내려 보내는 것을 모티프로 삼고 있는 신화는, 고조선(古朝鮮)의 단군신화와 하늘에서 구지봉으로 내려왔다고 하는, 6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신화에서 살필 수 있다. 또한 단군신화에서는, 천신이 아들 환웅에게 3종의 보기(寶器)를 안겨주고, 또한 오부신(필자 주 : 일본 신화의 다섯 신)은 아니나 풍사·우사·운사라고 하는 세 명의 직능신(職能神)을 딸려 보내서 산(필자 주 : 태백산을 말함)의 단목(檀木) 옆에 내려가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개국시켰다.
고목신(高木神)이라는 신의 이름과 단군이라는 이름 역시 나무와 관련이 있으니, 고목신과 니니기노미코토 신화의 형식이 단군신화와 현저하게 유사함이다.(필자 주 : 환웅의 ‘환(桓)’ 역시 모감주나무를 뜻한다.)
또한 산의 이름 ‘구지(龜旨)’와 ‘구시후루’의 ‘구시(環)’가 동일어(同一語)라는 것도 자명하다. 산 위의 봉우리를 ‘소호리’라고 했는데 이는 조선어의 ‘왕도(王都,seoul)’의 뜻인 ‘소호리(蘇伐라, 필자 주 : 신라의 왕도 서벌(徐伐)을 가리킴)’, 혹은 ‘소후리(所夫里, 필자 주 : 백제의 왕도 소부리를 말함, 부여의 별칭)’과 동일어이다.
이렇듯 종족의 조상신이 산 위에로의 내려옴(山上下降)을 모티프로 하는 신화는 조선 반도로부터 만주 땅까지 분포했었던 것을 알 수 있다.(『日本民族の起源』, 1968).
이 『고사기』 및 『일본서기』의 전설과 『가락국기』에서 전하는 6가야국 건국전설의 중요한 점들이 서로 하나하나 일치하고 있다는 것은 도우시샤대학 사학교수 미시나 아키히데(三品彰英 1902~1971)씨도 상세하게 논증한바 있다.
일부다처의 대표적 천신 ‘고황산존령’
외손자 니니기노미코토를 보자기에 싸서 지상에 내려 보낸 고목신(고황산존령)은 하늘나라 천고원에 살면서, 아들을 지상으로 떨어뜨린 사건도 유명하다. 신라로부터 동해바다를 건너가, 왜나라 이즈모(出雲)땅을 정벌한 신라계 신이 대국주신이다. 그동안 대국주신의 신화는 앞에서 여러 번 살핀바 있다. 어느 날 대국주신은 고목신의 아들을 맡아 기르게 된 것이 매우 흥미롭기도 하다.
이즈모땅을 평화롭게 다스리던 대국주신이, ‘오바마’땅에서 식사를 막 시작하려는데, 바닷가에서 갑자기 사람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국주신은 짐짓 놀래면서 바다를 둘러보았으나 눈에 뜨인 것은 없었다.
그가 ‘이상한 일이구나’ 여기고 있을 때였다. 새끼손가락만한 자그마한 인간 같은 생김새의 소인이 배를 저어 오는 게 아닌가. 산짐승 가죽으로 만든 배를 탔고, 굴뚝새의 깃털로 만든 옷을 걸친 소인이었다. 이름은 ‘소언명명’(少彦名命)이다.
대국주신은 재미가 나서 이 소인 소언명명을 손으로 집어서 제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놀았다. 매우 신기한 소인이라서 출신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대국주신은 신하를 불러서 하늘나라 고천원에 살고 있는 천신에게 보냈다.
신하가 고천원의 천신 ‘고황산영존(타카히무스히노미코토)’에게 찾아갔다. “고황산영존님께 여쭈고자 합니다. 지금 이즈모 바닷가에 계신 대국주신님께서 새끼손가락만한 소인을 데리고 계십니다. 그 소인의 정체를 몰라서, 소신이 고황산영존님을 알현한 것입니다.”
고황산영존은 대국주신의 사자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서 지시했다. “내가 낳은 자식은 모두 1천5백 명쯤이나 된다네. 그 중의 한 아이는 말썽만 피우면서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아. 내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 지상 세계로 떨어진 것은 어김없이 그 아이일 것이야. 그러니 귀엽게 여기면서 잘 키워주었으면 하네.”
새끼손가락 크기의 소언명명은 고목신인 고황산영존의 자식이었다. 고황산영존은 자그마치 1천5백 명 정도의 수많은 자식들을 거느리고 있었던 것이다. 고황산영존이야말로 일부다처의 대표적인 천신이었다. 그 많은 자식을 슬하에 두자니 과연 얼마나 많은 여자를 거느렸던 것일까. 신화에 그 수효는 기록이 없다.
트레킹 구간으로 접어 들면서 내려다 본 낙동강과 개호정
이곳이 옛날 개포나루가 아니었나 생각이 되네요.
참 공을 많이 들려 조성한 탐방길입니다.
위험한 곳은 안전시설이 모두 되어 있고 걷기 좋게 해 두었네요.
중간에 개산잔시비와 개산포전투전적지, 그리고 여목정유허지를 표시한 돌비를 지나게 됩니다.
위 지역은 개산포전투지.
임진왜란때 현풍에서 배를 타고 내려오던 적선을 물리친 곳입니다.
강변의 지형이 반반하지를 못하고 산 비탈이 되다보니 오르내림이 생각보다는 많습니다만 산행에 비하면 아주 수월한 곳이구요.
가을 낙엽에 푹신하게 밟혀 운치는 있습니다만 미끄럼에 주의.
좌측으로는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함께 합니다.
날씨가 너무 포근하여 땀이 살짝 날려고 하는데 그때마다 적당하게 불어오는 강바람에 아주 상쾌하게 걸을 수 있었답니다.
강변에 조성된 마늘밭..
드나들기도 힘들고 아주 외진 곳인데 정성이 가득 들인 마늘밭이 크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곳 개진앞의 낙동강은 경사가 없어 거의 흐름이 없습니다.
올려다본 산 비탈이 너무 정겹네요.
산죽과 대나무 그 뒤 하얀 침엽목 그리고 다시 늘 푸른 소나무 숲..
층을 만들고 있는 산자락 풍경이 예쁩니다.
이벤트성 출렁다리.
아주 좁아 교행을 할려면 서로 한번 껴안아야 할 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만난 이 분..
산 위로 MTB길이 잘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 트레킹 구간으로 들어와서 거의 반 정도는 자전거를 업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아마 담날 몸살 났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건너편으로는 도동의 진동산과 석문산..
그 뒤로는 대니산이 있습니다.
바람 불어서 자빠졌는데...
그래도 난 살거야.
4km정도 걸어서 도착한 너울길 종점 부례관광지입니다.
아이들과 오면 아주 좋은 곳이네요.
어드벤처체험장이 있는데 공짜는 아닙니다. 5000원이라고 되어 있네요.
이건 공짜로 건너갈 수 있는데..
처음 건너보는 그물 출렁다리입니다.
발을 디디면 밑으로 빵구멍날듯 쑤~욱 빠지는 묘한 긴장감.
생각보다 상당히 쫄리네유... 바닥이 터질까봐..ㅠㅠ
부례관광지 앞 산 기슭에 있는 부래정으로 오르면서 내려다본 관광지 풍경입니다.
캠핑시설도 잘 되어 있습니다.
부래정(浮來亭)
이곳 인근의 동네 이름이 부례이고 바로 앞에 부례관광지가 있어 당연히 부례정인줄 알았는데 부래정(浮來亭)이네요.
잘못 표기한 내용을 소중한 분께서 지적을 해 주셔서 바로 잡습니다.^^
부래정은 임란 때 의병장 박정번 선생이 1603년 지은 정자라고 합니다.
전쟁이 끝났지만 혹 왜적이 강을 타고 오르는지 감시할 요량으로 뜰 부(浮)자에 올 래(來)자로 정자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 그런 깊은 뜻이 있는줄도 모르고 부례정이라고 지레짐작으로 생각했으니..
허물어 진것을 후손들이 다시 지은것 같습니다.
아주 경치는 그만인 장소입니다.
주변에서 까마귀가 자꾸 울어대길래 좀 남겨두고 점심식사.
되돌아오는 길은 MTB 산길입니다.
임도를 산길로 만들었는데 참 걷기좋고 운치있습니다.
샛길 염두에 두지말고 계속 임도만 따라 걸으면 됩니다.
청운각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
말 그대로 빗자루몽댕이네요.
자루도 손때가 반질반질..
이 글 보시고 이 구간 트레킹 하시는 분..
빗자루 보시 부탁 합니ㄷ~~~ㅏ.
청운각의 남쪽 조망
북쪽 조망
망개라는 말이 입에 배여 있는데 어느날부터인가 청미래라는 말이..
어릴때 시골에서 추억이 많은 열매입니다.
산 위로는 커다란 전신주가 계속 이어지는데 상당히 위압적입니다.
둘어서, 셋이서..
참 걷기좋은 산길입니다.
올때는 강변을 걸었다면 갈때는 강을 내려다보면서 걷게 됩니다.
간간 조망이 트이는 곳이 있어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미세먼지 없다면 좌측 뒷편으로 비슬산이 우뚝 솟아 보여야 하는데 ...
제가 산길에서는 걸음이 조금 빠른 편인데 어떤 여성 한분이 줄기차게 따라 옵니다.
내 좋아해서 그런갑따 하고 잠시 멈춰서 기다리는데 오늘 현풍장날이라면서 얼릉 내려가봐야 한다며 쓩 지나가네유..ㅠㅠ
임도를 계속 따르다보면 얼추 개포리 제방둑에 가까워질 무렵 왼편으로 전망대 올라가는 데크계단을 만나게 됩니다.
이곳에 개경포 전망대인데 내려다보는 경치가 아주 좋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낙동강 물돌이.
왼편 강자락 뒷편이 도동서원.
참 풍경 좋습니다.
클릭하면 크게 보여 집니다.
가로수가 벚나무인데 4월 새 봄에 올라와서 보면 정말 멋질것 같네요.
개포제방과 들머리인 성구양수장이 내려다 보입니다.
그 뒷편으로 개경포공원도 보이구요.
하산길은 개경포전망대에서 왔던 임도MTB길을 다시 100m 정도 되돌아 와야 합니다.
그러면 위와 같은 돌탑 쌓아 둔 곳이 보이는데 이곳으로 하산을 하면 됩니다.
돌탑은 하산길이 애매하여 제가 쌓아서 표시를 해 둔 것입니다.
맨 위에 쌓아둔 스톤발란싱은 아마도 무너지고 없을 것입니다.
멋찌다.
부러운 젊음...
낙동강 강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힙니다.
봄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네요.
고기잡는 어부는 이제 손이 시렵지 않아 조금 나을것 같습니다.
제방둑에서 바라 본 낙동강 풍경.
타임머신을 타고 천년의 역사를 당겨 봅니다.
개포나루터에는 봄을 실고 온 목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네요.
트레킹 후 들린 개경포공원과 고령개포동석조관음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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