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와 순천만 갈대밭을 다녀왔다.
일요일, 嶪을 가진 아내는 새벽부터 나가고 없고, 남자 아이놈은 나 만큼 마시는 술로 제 방에서 애완견 뭉치를 보듬고 천지 모르게 자고 있고.. 베낭을 메고 산신령님 면담을 계획하는 것이 여느날의 일요일 풍경이나 오늘은 무심결에 딸애방에 들려 잡담을 나누다가..
- 낙안읍성의 막걸리가 먹고 싶다. 올때 운전기사가 없는데.. 네가 좀 한바리 할래?
머뭇거리던 딸애가 무슨 생각인지
-그럼 땡겨볼까!..
하며 옷을 주워 입는다. 왠일?
긴 시간을 달려 도착한 갈대밭은 철이 지나는 시기라 약간 을씨년스러울 것이라는 짐작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세계 5대 연안 습지중의 하나인 순천만의 풍경은 그 명성처럼 너무나 아름다웠다.
원래는 남원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19번 국도 섬진강변길에서 어줍잖은 詩 하나를 건져 올리고, 낙안 읍성에 들려 막걸리 한 툭배기를 하고 올 계획이었는데, 갈대밭에 퍼질고 앉아 멍하니 시간을 모두 빼앗겨 버리는 바람에 죽어도 막걸리는 마셔야 된다는 내 욕심은 앙칼진 딸애의 잔소리를 이기지 못하였다.
끝없이 이어진 갈대 숲길을 옷깃을 세우고 잔잔히 거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년 말쯤에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아이의 장래 문제와 인생 문제..
그러나 이야기를 엮어 나가다 보면 어느덧 조리있는 생각을 가득 가진 아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나는 시대의 뒷골목에서, 내 입 밖에 흘리는 말도 수습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스스로를 보게된다.
다 큰 딸애와 나선 여행길,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새벽 일용시장 일 나가는 차림으로 나왔지만, 생각하여 보면 언제 이런 시간을 자주 낼수 있겠는가?
세월이 흐르고 과년한 이 아이가 내 집을 벗어나 스스로 한 가정을 지켜 가면서 지난 시간을 떠 올릴때, 오늘 하루 못난 아빠와 보낸 한 날은 저나 나나 소중한 추억으로 아주 오래할 듯 하다.
아이가 나에게 폼을 잡아보라 한다.
미소지은 얼굴이라고 여기며 찍혀 보지만 사진에서는 언제나 무뚝뚝이로 나온다.
순천을 빠져 나오면서 오천동 국화단지를 들렸다.순천시에서 가꾼 멋진 꽃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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