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서로 존댓말을 하면서 지낸 지가 벌써 몇 달 되었네요.
처음엔 무지 어색하더니 이젠 조금씩 입안에서 말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서로 존댓말]이라 하였지만 사실 그동안 아내는 제게 존댓말을, 저는 반말로 하던 것을 제가 말투를 바꾼 것입니다.
근데 왜 바꿨을까요?
아내에 대한 존경심이 늘거나, 나이 들어 나 몰래 이사 갈까 봐, 아님 불평등한 지위체계를 개선코자 그리한 것은 결코 아니구요.
나이 드니 바꿀만한 이유가 저절로 생기더이다.
아이들이 집에 없어 아내와 단둘 있다 보니 이 여인께서 조금씩 겁이 없어지고 어느 날부터인가 말끄트머리를 슬슬 잘라 먹더니 나중엔 반말 비슷하게 변해 버리더라구요.
아시다시피 경상도가 고리타분한 보수지역이고, 그 중 대구는 그 기가 더 센 곳인데 이런 변화를 접하니 조금 당황스럽더이다.
여필종부는 아니더라도 명색이 가장이고 나름 양반피가 흐릅네 라며 조상님을 들먹이기도 하였는데 생소하게 들려지는 혀 짧은소리에 은근 부아가 돋더라고요.
그래 날을 잡아 한 날, 기어이 작정하고 아내를 불러 타일렀습니다.
"자네하고 나랑은 나이로 치면 세 살 터울이고, 또 집안으로 치면 내가 가장인데 말투가 그게 뭔가?"
"뭐 어때서.. 나는 정감이 있고 좋은 것 같은데, 우리 친구들도 모두 편하게 반말하고 지낸다던데....요."
어이가 없어 혼자 픽 웃고 말았습니다.
요즘 계모임이니 뭐니 하면서 버르장머리없는 여편네들과 어울려 다니더니 사람 버려 놨네요.
"앞으론 그러지 마. 버릇 되면 고치려 하여도 못 고친다. 그리고 나도 차츰 당신한테 존대하도록 바꿔 볼게."
그렇게 하여 엉겁결에 쌍방존대를 공언하고 하루가 지나니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더이다.
서로 말이 없어진 것입니다. 다툰 것도 아닌데 제가 먼저 말을 하려니 간지러움이 앞섭니다.
그렇게 둘이 앉아 뉴스도 보고, 밥 나눠 먹고, 다큐멘터리도 보고, 다시 뉴스 보고, 그리고 자고..
요상하고 이상한 시간이 며칠 흐르고,
제가 차츰 말을 틔워 나갔습니다.
출근 때는
"나 가요."
퇴근 후에는
"나 왔쏘."
조금 간질간질 하지만 이렇게 말을 트여나가니 상대적으로 아내의 말투는 완전 달라졌습니다.
반말 비슷하게 잘라 먹던 말투가 조선시대 말투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그저께는 저녁 밥상머리에서 자랑을 하네요.
친구들한테 이런 내용을 이야기하니 모두 은근히 부러워하더라며..
몇 달 흘러 이제는 서로 말하기가 아주 편해져 스스럼없이 쌍방 존대를 하며 지내고 있답니다.
부부싸움을 할라 쳐도 이전과는 사뭇 말투가 달라져 단기전으로 끝나 버립니다.
씰데없이 가졌던 기득권을 포기하니 그만큼 내 속 꽁심쟁이도 사라져 이전의 스트레스도 없어졌구요.
덧셈 뺄셈으로 거래가치를 해석한다면 결국 제가 승리한 셈입니다.
아래 대화를 보시면 알 것입니다만..
"잡시다."
"예, 당신도 잘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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