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태어난 고향 합천에는 그리 볼게 '없었는데'...............
제 어릴때 합천은 자랑할 것이라고는
맑은 자연과 청정 개울, 그리고 황강.
그속에 반짝 반짝 빛나는 돌들이 다였답니다.
근간(20년정도 사이) 들어와서 이것저것 엄청 뜬 동네가 되었답니다.
가장 소개하기 좋은 곳은 대한민국 철쭉 1번지 황매산,
그 아래 숨은 금강산인 모산재.
그리고 해인사와 가야산이 있고,
산꾼들 사이에는 가야산보다 더 자주 들락거리는 대병 3산인 악견산, 금성산, 허굴산이 있답니다.
허굴산 자락에는 요즘 입소문으로 핫 해진 여행지 천불천탑이 있구요.
산 뿐만 아니고 합천호를 이어 거창까지 연결된 백리벚꽃길과 합천호를 끼고 달리는 대형 바이크 라이딩 코스는 익히 명품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합천호는 낚시가 전혀 되지 않는데 외래어종이 많아 토종 물고기가 씨가 말랐다고 합니다.
역설적으로 수변은 더할나위 없이 깨끗하구요.
댐 아래 자리한 영상테마파크는 전국적 숱하게 많은 영상세트장 중에서 매년 흑자를 내는 유일한 곳입니다.
요즘은 고스트파크와 청와대세트장, 그리고 바로 인근 루지까지 생겨 인기 만점이구요.
이 모든 걸 즐기고 나서 삼가면에 있는 한우식당에 들려 맛난 식사를 하면 최상의 합천여행이 된답니다.
...........
합천은 경남 시도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군 내 읍도 하나없는 초라한 행정살림이었다가 1979년 합천면이 겨우 읍으로승격이 되어 지금은 읍 하나에 16개의 면을 가진 고장이 되었답니다.
옛날 삼국시대전에는 가야국에 속해 있다가 신라장군 이사부가 가야를 접수하는 바람에 신라국으로 편입되었는데 백제와 졉경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군사적 요충지역이었습니다.
특히 황강을 끼고 있어 지리적으로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백제와도 숱하게 전쟁을 하였구요.
이런 지리적 요충지 중심에 해발 90m의 황우산(매봉산이라고도 합니다.)이 있고 대야성이 둘러쌓여져 있었답니다.
서기 642년 이곳 성주는 김품석, 그의 아내는 김춘수의 장녀 고타소랑.
장군 윤충의 지휘 아래 백제군 1만명이 쳐들어 오고 김품석은 승산이 없는 전투라 항복하고 가족들을 죽인 뒤 본인도 자결을 합니다.
이때 병사들을 모아 끝끝내 적군과 싸운다가 장렬히 전사한 장수가 있는데 그의 이름이 죽죽(竹竹)입니다.
이곳 항우산 자락에는 신라의 화랑 출신이자 의기의 충신 죽죽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 그의 이름은 합천군가에도 등장한답니다.
합천군가(陜川郡歌)
1. 아 아라이 푸르른 하늘을 이고 뫼천년 물천년에 터잡은 이곳
서으론 황매산성 동으론 낙동 쓰고 남아 쌓도록 기름지구나
2. 부지런을 씨로뿌려 가꾸는 살림 누구라 내울안을 넘겨볼 것이
의를 보면 죽음으로 깃발을 꽂는 그 옛날 신라 남아 죽죽을 보라
3. 은은한 가야 영지 쇠북소리로 오늘도 또 하루의 새 정신 닦아
맹세코 빛내리라 다함이 없이 조상이 꽃 피워준 귀한 이름을
(후렴)내 고장은 합천땅 열일곱집이 한식구로 모여서 번영하는 집
위 군가에 등장하는 후렴 부분 열일곱집은 현재 합천읍과 16개의 면을 의미합니다.
합천군가 듣기 :
이렇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항우산 대야산성 아래, 황강을 굽어보며 자리한 누각이 함벽루(涵碧樓)입니다.
처마의 빗물이 강물로 바로 떨어지는 장소라서 더욱 유명합니다.
합천의 젖줄인 황강은 거창 고제의 삼봉산에서 발원을 하여 덕유산 자락 위천과 만나 황강이 되고 합천을 지나 낙동강과 만나게 됩니다.
상류에 오염지역이 전혀 없어 완전 무공해 강물이었는데 이곳 오랜 숙원이었던 합천댐이 지난 1989년에 준공되어 황강을 가로막는 바람에 그 옛날 물줄기는 조금 상쇄되었답니다.
하지만 황강은 그래도 황강.
그곳 자락에 우뚝한 함벽루는 그 의젓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답니다.
함벽루는 고려시대 작품입니다.
충숙왕 8년인 1321년 고려 충숙왕때 세워졌으니 지금부터 약 700년 전입니다.
합천댐이 생기기 전 홍수가 나면 상류에서 온갖 것들이 많이 떠내려 왔는데 이 시절에도 상류에서 나무들이 많이 떠내려와 이 나무들을 건져서 지은 정자라고 합니다.
함벽루와 마주보는 강 건너는 흡사 해운대 백사장처럼 보이는 곳이 있는데 황강레포츠공원입니다.
여름에는 거의 해수욕장 분위기가 나는 곳이구요.
이곳 건너에는 아름다운 습지 정양호(正陽湖)가 있답니다.
함벽루 옆에는 신라 고찰 연호사(烟湖寺)가 있습니다.
해인사가 동생뻘쯤 되는 오래된 절집입니다.
대야성 전투에서 회생된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와우선사가 창건한 절입니다.
요즘처럼 장마철에는 으스스한 저녁, 전장에서 희생된 신라의 젊은 영혼들이 함벽루 누각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 간간 보인다고 한다는데...
그들을 만나 막걸리라도 나누며 천년의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나요.
함벽루 들리기 전 주차할 곳을 찾다보면 바로 앞에 연호사란 절이 보이고 그곳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됩니다.
산 기슭으로 어슬렁거리며 오르다보면 언덕 위 숲속에 숨어 있는 옛 기와집이 한채 보이는데 공암정(孔巖亭)입니다.
합천이씨의 재실입니다.
앞쪽으로 배롱꽃이 막 피기 시작하고 있네요.
몇일간 비가 내려 황강물이 유유합니다.
합천댐이 생겨 수량을 조절하는 관계로 黃江은 이제 사라진 말이 되었네요.
이전에는 큰 비가 내리면 이 강물이 정말 누른 황토물로 사납게 흘러 내려 갔답니다.
그때 꼬맹이 시절,
큰 비 내려 강물이 끓듯이 흘러 내려갈때 이쪽 강기슭에서 건너편 강 기슭으로 헤엄을 쳐서 건너가기도 하였답니다.
수백m 하류쪽으로 도달하게 되구요.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네요.
왜 그리하고 놀았는지...ㅎ
항우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비석들.
대개 역대 합천군수의 공적비가 많습니다.
눈에 뜨이는 비석 하나.
민초의 고초를 헤아려 제대로 된 정치를 한 합천군수 이증영의 유허비(공적비)
경남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남명 조식선생의 글이라 더욱 돋보이는 비석인데 극심한 흉년에 민초를 자식처럼 보살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항우산 정상으로 올라 갑니다.
구두 신고 모처럼 산행을 하네요.
해발 90m입니다.
정상에는 별 거 없습니다.
그냥 정상 자위로 한바퀴 빙 도는 산책로가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대야성의 흔적이라도 볼까하여 올라왔는데 아무것도 없네요.
다시 강변으로 내려 왔습니다.
걷기길이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 아주 좋게 되어 있답니다.
비 온 뒤라 강물이 많이 불었습니다.
함벽루 옆에 있는 연호사.
말 그대로 천년고찰입니다.
서기 642년 창건했답니다.
황강을 바로 끼고 있는 절로서 김춘추의 딸 고타소랑과 신라의 장병 2천여명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은 원찰(願刹)입니다.
연호사 범종각
이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연호사 보살님이 내다 보며서 합장을 하여 줍니다.
함벽루 정면입니다.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는 글이 흑판백서 현판으로 달려 있습니다.
함벽루(涵碧樓)라는 현판은 누각 측면에 붙어 있어 특이 합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세요. 라고 적혀 있는데....
마루바닥이 온통 흙발자국입니다.
앞쪽으로 황강레포츠공원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별 볼일없는듯 보이지만 이제 장마 끝나고 여름시즌이 되면 이곳 레포츠공원은 해운대 저리가라입니다.
함벽루 정면 뒷쪽 절벽 자락에는 우암 송시열의 친필 涵碧樓(함벽루)란 글씨가 크게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멋지게 잘 썼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옛 어른들이 바위에 낙서를 하기 참 좋아했다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꼭히 시비거는 건 아니지만 우암이 새겨놓은 글씨만도 전국에 여러곳이지유..
주변에는 온통 이름자를 새겨놓은 것들로 빽빽합니다.
선조들의 내림을 이어받아 간혹 외국에 나가서 아무데나 지 이름자을 써 두는 오는 버릇이 있다는게 문제는 문제네요.
요즘으로 치면 '낙서금지'인데 그 시절에는 이런게 운류였던 모양입니다.
누각으로 올라 가 봅니다.
누각 안쪽으로는 당대 문인이나 시객의 글들이 편액으로 잔뜩 걸려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제가 함벽루에서 떼어 온 현판들입니다.
조선시대 세종과 문종 때 예문관 대제학과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교은(郊隱) 정이오(鄭以吾)의 시
이 편액은 원판이 분실되어 복원해 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편 내용은 다음과 같구요.
사군휴객빙강루(使君携客凭江樓) : 손님을 이끌고 함벽루에 기대 서니
누상가인유막수(樓上佳人有莫愁) : 함벽루 위에 절대미인 ‘막수’가 있구나
갱환옥선굉옥적(更喚玉仙轟玉笛) : 옥선을 다시 불러 옥피리를 크게 부니
공반명월부방주(共攀明月俯芳州) : 밝은 달과 함께 방주(芳州)를 굽어보네
최익현(崔益鉉)의 시
남주형승천사루(南州形勝擅斯樓) : 남쪽 고을 좋은 경치 함벽루가 제일이니
하행잔년부원유(何幸殘年賦遠遊) : 다행히 저문 해에 시를 짓고 노닐었네
막위초정미향배(莫謂初程迷向背) : 초행길에 등 돌리니 아득하다 말을 말라
우옹수택병연유(尤翁手澤炳然留) : 우암선생 고운 손길 빛 나게 머물렀네.
문경종(文璟鍾)의 시
편액 앞부분에 '서퇴계선생시판경차원운(書退溪先生詩板敬次原韻)'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퇴계선생의 시를 먼저 보고 존경의 의미로 쓴 시라고 생각됩니다.
등임수승휴(登臨搜勝休) 좋은 경치 찾아서 오르고 마주치니
도재일호류(都在一湖流) 눈앞에 모든 것이 강물속에 남아 있네
허정건구족(虛汀騫鷗足) 텅빈 물가에 해오라기 발을 겉고
유굴몰용두(幽窟沒龍頭) 그윽한 굴속에는 용머리 빠져 있네
헌고평지원(軒高平地遠) 처마가 높았으니 들녘이 멀어 졌고
맹압별천부(甍壓別天浮) 대마루 눌렀으니 다른하늘 떠 있네
앙송선생운(仰誦先生韻) 퇴계 선생 詩를 우러러 송독하니
분방영세유(芬芳永世留) 꽃다운 향기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도다.
허사겸(許士兼)의 시
착득천심루(鑿淂千尋樓) : 팔척의 누(樓)에 쪼개지는 물 모양
개헌부벽류(開軒俯碧流) : 헌함을 열어 푸른물에 엎드렸네
교횡춘수상(橋橫春水上) : 긴 다리는 봄 강위에 걸쳐 있고
주와백사두(舟臥白沙頭) : 작은 배는 백사장에 누워 있네
천활안성원(天濶鴈聲遠) : 넓은 하늘에는 기러기 소리 멀고
강공운영부(江空雲影浮) : 빈 강에 구름 그림자 떠 있네
기려권유객(騎驢倦遊客) : 당나귀 타고 한가히 노는 나그네
회수갱엄유(回首更淹留) : 머리 돌려 다시 한번 머무르네
광산 김영헌(金永憲)의 시
산수중간제일루(山水中間第一樓) 제일가는 함벽루 산수간에 서 있으니
문장금고주청유(文章今古足淸遊) 고금의 문장들이 맑은 놀음 더해주네
위현석각고암로(危懸石角孤菴露) 위태한 돌귀퉁이 외딴절(寺) 드러 나고
고압파심곡함부(高壓波心曲檻浮) 높이 눌린 물결속에 굽은 난간 떠 있네
낙일마시추초안(落日馬嘶秋草岸) 가을날 풀언덕에 해(日)진다 말이 울고
서풍인의목란주(西風人倚木蘭舟) 서풍속 나그네 목란배(舟)에 의지 했네
영호천리귀장촉(嶺湖千里歸裝促) 영호남이 천리인데 행장을 재촉하니
가석명구부잠유(可惜名區不暫留) 애석하다 명승지에 잠깐도 못 머무네.
난포 이대형(李大馨)의 시
남정강상유고루(南汀江上有高樓) 남정강 강물위에 함벽루 있었거늘
무주무시기도유(無酒無詩幾度遊) 술과 詩가 없는 곳에 얼마나 놀았던고
반백류년금일호(半百流年今日好) 반백년 남짓한데 오늘이 가장 좋아
만천다사차생부(萬千多事此生浮) 이승에 천만다사 물위에 띄워 놓고
산승수기운영탑(山僧睡起雲盈榻) 산승이 잠을 깨니 그 자리 구름 차고
조수귀래설만주(釣叟歸來雪滿舟) 老어부 돌아오니 눈(雪) 가득 실었구나
차이관안응소아(嗟爾慣顔應笑我) 너희야 나를 알아 웃음으로 대하건만
명구지득편시유(名區只得片時留) 이름난 좋은 땅에 그저 잠시 머물었네
조선 말기 문신 이종하(李鍾夏)의 시
합천강수록인린(陜川江水綠粼粼) 합천의 남강물이 푸르고 맑디 맑아
취죽청사안환신(翠竹晴沙眼奐新) 푸른 대(竹)와 맑은 모래 눈부시게 새롭도다
시사하년간백전(試士何年看白戰) 선비시험 어느 해에 백일장을 보였으며
위민금일포단륜(慰民今日布丹綸) 백성위한 임금 명령 오늘날에 반포하네
전부집극순풍변(田夫執戟淳風變) 농부가 창잡으니 맑은 풍속 변해 가고
군리하서기업분(郡吏荷鋤氣業貧) 군청관리 호미 매니 예전없이 가난하네
차지중과증불급(此地重過曾不急) 이곳에 거듭와서 조급하지 아니하니
설애홍조총전인(雪涯鴻爪捴前因) 눈(雪)위 기러기 발자취 모두가 인연이네.
송시열의 후손인 연재 송병선(宋秉璿)의 시
삼월남유객(三月南遊客) 삼월에 남쪽을 유람하는 나그네는
휴공불잠휴(携笻不暫休) 지팡이 짚고서 잠시도 쉬지 못하네
산하무걸구(山河無傑句) 산천에는 뛰어난 글귀가 없어도
우주유명루(宇宙有名樓) 세상에는 이름난 누각이 있다네
위벽당첨립(危壁當簷立) 높다란 절벽이 처마와 마주 서 있고
청강요함류(晴江绕槛流) 맑은 강이 난간을 감싸고 흐르네
암제간선필(巖題看先筆) 바위에 있는 선현의 필적을 보고나서
보하석양주(步下夕陽洲) 석양의 모래톱으로 걸어 내려가 보네.
함벽루기, 송시열의 글
남면 조식선생의 오언절구 한시
喪非南郭子 남곽자 같은 무아지경에 이르지는 못해도
江水渺無知 흐르는 강물은 아득하여 앎이 없다네.
欲學浮雲事 뜬 구름같은 일을 배우고자 하나
高風猶破之 높은 풍취가 오히려 깨어 버리네.
퇴계 이황선생의 시판
북래산두기(北來山陡起) 북쪽은 산이 높이 솟아 있고
동거수만류(東去水漫流) 동쪽은 강물이 유유히 흐르네.
안락번주외(鴈落藩州外) 기러기는 고을(籓州) 밖에 떨어 지고
연생죽옥두(烟生竹屋頭) 연기는 대숲집(竹屋) 위로 올라 오네.
한심지의원(閒尋知意遠) 한가로이 찾아드니 나의 뜻 멀고
고의각신부(高倚覺身浮) 높은 누각 기대서니 강위에 뜬 것 같네.
행미명강반(幸未名韁絆) 다행히 관직에 얽매이지 않아
유능임거류(猶能任去留) 여기와 머무는 것이 자유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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