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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밀양 영남루에는 7살 아이가 쓴 편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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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장마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감을 잡을 수 없는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일요일 오전에 잠시 하늘이 파란색인듯 하여 김여사와 함께 둘째 지율이를 데리고 바깥 나들이를 다녀 왔답니다.

하루 내내 하늘이 맑아졌다 흐려졌다 비가오다 개이다, 정말 변덕스런 하루였습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 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남천강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벽공에 걸린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

 

밀양아리랑 가사의 일부입니다.

이 노래의 3절에 등장하는 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으로서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는 건물입니다.

현재 국보로 승격하는 걸 추진중에 있는데 진주 촉석루가 이전에 국보였다가 한국전쟁때 소실되어 1960년에 새로 지어지면서 타이틀을 잃고 말아 이곳 영남루가 국보로 승격이 된다면 진정 남한에서 가장 우수한 누각 건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밀양강(남천강)변 절벽 위에 위치하여 경관이 수려하고 규모나 건축미도 빼어나 명싱공히 밀양의 랜드마크역활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영남루는 1365년 고려 공민왕 시절, 절터였던 자리에 누각을 지어 영남루라 하고 그 뒤 조선 헌종(1842년)때 화마로 소실된것을 1844년 밀양부사가 다시 재건하여 도호부 객사 건물로 사용하다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바닥에서 높이 띄워 마루를 깔고 사방을 휜히 볼 수 있게 벽과 문이 없는 건물을 누각이라하는데 정자와 비슷하지만 규모면에서 차이가 난답니다. 정자가 산 속이나 계곡에 자라하여 은둔적이라면 누각은 대개 살아있는 권력자의 권위가 돋보이는 장소이기도 하답니다.

 

영남루의 특징은 먼저 규모면에 있습니다.

누각 내부가 천정도 높고 양 사방이 탁 트인데다가 앞쪽으로 시원한 강물이 흘러가니 더욱 크게 보여 집니다.

대략 가로는 18m 정도 되고 세로는 12m 정도인걸로 되어 있습니다.

정면 5칸과 측면으로는 4칸으로 되어 있는 2층 누각 내부는 한아름이 넘는 기둥이 압도적이며 천정의 공포와 귀면장식을 시원시원하게 만들어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이곳에 오르면 완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답니다.

 

밀양 영남루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현판입니다.

조선 후기 현재의 모습으로 중수할 당시 밀양부사로 있던 이인재(李寅在)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쓴 글씨인데 거의 불가사의한 수준입니다.

내용은 아래 사진 설명글에 올려 놓았습니다.

영남루 구경하고 70계단 아래 아랑의 애달픈 전설이 전해지는 아랑각도 들려 보길 권합니다.

 

 

여행지 : 밀양 영남루

일 시 : 2020년 8월 9일(일요일)

여행코스 : 대구 - 달성보(낙동강 물구경) - 창녕 산토끼동산 - 영산 만년교 - 밀양 영남루 - 대구

 

 

 

 

 

 

 

 

밀양강(남천강) 건너에서 바라 본 영남루

비가 많이 내려 남천강물이 엄청 불어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누각건물로 알려진 영남루.

이층 누각으로 된 팔작지붕이 완전 건사하게 보이고 멀리서 봐도 그 위용이 한 눈에 들어 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가면 영남루 입구에서 만나게 되는 초가집과 동상 하나.

애수의 소야곡을 작곡한 고 박시춘선생의 상입니다.

밀양이 고향이지요.

 

 

 

 

 

밀양 영남루가 좋은 점 또 하나는 이곳 누각에 누구나 올라 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 별 볼일 없는 냇가 정자도 계단 입구를 막아놓고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출입금지" 라고 금줄을 쳐 두었는데 이곳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요.

자고로 마루는 사람 발바닥으로 문질러져야 수명이 오래 간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일단 마스크 미착용자는 올라 갈 수 없습니다.

열 체크도 해야 하구요.

 

 

특이하게도 이곳 영남루는 커다란 현판이 세개나 걸려 있답니다.

‘영남루(嶺南樓)’가 중앙에 있고, ‘강좌웅부(江左雄府)’와 ‘교남명루(嶠南名樓)’가 좌우에 걸려 있습니다.

중앙의 대표격인 嶺南樓(영남루) 편액의 글씨는 당대 최고의 명필로 알려진 송하(松下) 조윤형(曺允亨)가 64세 완숙의 경지에서 쓴 글씨입니다.

현판 끝에 쓴 낙관글에는 무신(戊申)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1788년입니다.

현 건물은 1844년 재건한 것이므로 이전의 건물에 달려 있던 현판을 그대로 옮긴것으로 생각되네요. 

 

 

먼저 올라가 있는 지율이와 김여사

저는 마스크를 차에 두고 와서 부리나케 달려가서 마스크 착용하고 누각으로..

 

 

이층 누각에는 제법 많은 이들이 올라 와 있습니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시원합니다.

후텁지근한 장마철..

그 텁텁함이 한순간에 싹 날아가는 장소입니다.

그냥 한숨 자고갈까 생각이 들 정도이네요.

 

 

천정에 새들이 집을 짓는걸 방지하기 위하여 그물을 쳐 두어 윗쪽 사진은 조금 선명하지 않습니다.

영남 제일루(嶺南第一樓)의 현판

위 간판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영남루를 재건축한 밀양부사 이인재의 장남인 이증석이 11살때 쓴 글씨입니다.

말미에 "癸卯初夏澣李憎石十一歲書(계묘초하한이증석십일세서) :1843년 초여름 11세의 이증석이 쓰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내부에 걸려있는 嶺南樓(영남루) 현판.

이건 더 놀랍습니다.

한칸 위 사진과 같은 해에 쓴 이인재의 둘째아들 이현석이 7살때 쓴 것입니다.

현판 말미에는 "癸卯初夏澣李玄石七歲書(계묘초하한이현석칠세서) : 1843년 초여름 이현석이 7세 때 쓰다"라는 글귀가 젹혀 있습니다.

아래쪽에 촛점을 잡아 현판 사진이 좀 어두운데 아래에 현판만 올려 놓았습니다. 

 

 

7살짜리 이현석이 쓴 嶺南樓(영남루) 현판

작은 아이가 이 큰 글씨를 어떻게??

이곳을 찾는 학자들이 거의 불가사의로 생각하는 작품입니다.

 

 

내부 천정은 아주 위용적입니다.

저렇게 굽은 나무를 어디서 구해서 절묘하게 저렇게 맞춰 놨을까 신기하네요.

 

이 외에도 영남루 내부에는 커다란 현판들과 이곳을 다녀간 시인묵객들의 편액들이 많이 걸려있는데 입구에 그걸 변역해서 놓아둔 것이 있어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해 두었답니다.

 

너무 시원하여 한참이나 앉아 있다가 나왔답니다.

책을 가져 가서 본다든지 잠시 오수에 취한다든지 ..

암튼 천하에 둘도 없는 쉼자리입니다. (음식 반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영남루에서 내려다보는 남천강(요즘은 거의 밀양강이라고 합니다.)

위의 하얀 다리위로 KTX가 슝하고 지나간답니다.

 

 

바로 아랫쪽

죽림 안쪽으로 아랑각이 자리하고 있답니다.

 

 

하류쪽입니다. 밀양교가 보이네요.

 

 

주차장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바로 올라 오는 길.

배롱꽃이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영남루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돌아 목계단 70개를 밟고 내려가면 아랑각을 만나게 됩니다.

 

 

아랑각 입구

아랑문이라고도 하는데 정순문(貞純門)이란 현판이 달려 있습니다. 

 

 

 

아랑의 영정을 모셔놓은 아랑사(阿娘祠)

 

 

아랑의 초상

그 시대의 인물이지만 약간 현대적인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한참 쳐다보고 있으니 처연한 기분이 드네요.

 

아랑각은 조선 명종(재위 1545∼1567) 때 미모가 뛰어난 밀양부사의 외동딸 윤동옥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입니다.

윤동옥은 유모의 꾀임에 빠져 영남루에 달구경을 갔다가 통인 주기에게 정조를 강요당하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정절을 지켰다고 하는데 이 지방 사람들은 아랑의 넋을 위로하고 뭇여성의 본보기로 삼고자 해마다 4월 16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통상 전해지는 아랑의 전설

자색이 뛰어난 밀양 부사의 딸이 유모의 꾐에 빠져 달 구경을 나갔다가 남몰래 그녀를 사모하던 남성에게 겁탈을 당한 후 살해되었다. 그 후 밀양으로 내려오는 부사마다 부임한 첫날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어느 해 담력이 뛰어난 신임 부사가 부임한 첫날 아랑 귀신을 만났는데 그간 여러 신임 부사가 아랑의 원혼에 놀라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랑은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말했고 부사에게 다음 날 아침 동헌 뜰에 모든 관청 사람들을 모으도록 하였다. 아랑의 원혼이 나비로 변해 자신을 살해한 통인에게 다가가 앉았다. 이로써 아랑의 원한을 풀게 되었다.

 

 

아랑각 아래에 있는 커다란 고목

중간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데 크기가 상당합니다.

 

 

다시 걸어 올라 오면서 새롭게 보게되는 대나무 숲.

그니는 이곳에서 주검으로 발견이 되었다지요.

대숲 바람소리가 아랑낭자의 슬픈 전설 이야기를 들려 주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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