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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일기

해인사 13암자 걸어서 둘러보기 - 2편

 

1부에 이어 연결됩니다.

8시간 정도밖에 안 걸린 탐방 시간이지만 13곳의 암자와 해인사까지 둘러보는 일정이다보니 사진도 많고 느낌표도 많아 두번에 걸쳐 올려 놨습니다.

1부 끝에서는 아주 귀하게 접견한 희랑대사의 초상화를 그대로 조각한 우리나라 유일한 건칠좌상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2부는 해인사 경내를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입니다.

 

해인사라고 하면,

붙는 수식어가 합천 해인사이고, 해인사 팔만대장경입니다.

서기 802년 신라 애장왕에 창건된 고찰인데 6.25때 이곳에 빨치산들이 점령하여 폭격 명령을 받은 김영환장군과 파일럿들이 명령을 잠시 거부하고 상관을 설득하여 이곳에 폭탄이 떨어지는 걸 막아 지금의 해인사가 존재하게 된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3보사찰 중 대장경을 보유하여 법보에 해당하는 사찰이구요.

 

제 주관적인 생각으론,

해인사 1번지로 구광루 1층 북카페와 자그마한 전시 작품들, 그리고 차 한잔 하는 공간을 추천합니다.

창틀의 운치 그만이구요.

햇살이 앞마당에 가득하여 사람들이 해인도 만(卍)자를 도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잠시 세상을 벗어나는 기분이 되곤 한답니다.

 

2부 탐방코스

해인사 - 일주문 - 해인선원 - 지족암 - 희랑대 - 백련암 - 국일암 - 약수암 - 성철스님 사리탑 - 성보박물관 - (차량이동) - 길상암

 

 

해인사의 주 법당인 대적광전입니다.

초창기 지어진 건물이 그대로 있었으면 국보급이었을텐데 지금의 건물은 조선 후반기에 다시 지었다가 근래에 대보수를 한 것입니다.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이 주불로 모셔져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으로 올라갑니다.

 

 

이전에는 이 문을 통과하여 앞뒤로 가면서 장경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금줄이 많이 쳐져 있습니다.

세계유산이자 우리의 국보인 대장경판은 원래 강화도에 있던걸 이곳으로 옮겨 온 것입니다.

해인사는 신라때 지어졌고 팔만대장경은 고려때 만들어졌고 이곳 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은 조선시대 만들어 졌습니다. 

 

 

해인사 천천히 구경하고 다시 일주문을 거쳐 바깥으로 나갑니다.

곧바로 선원쪽으로 건너갈수도 있지만 일주문을 내려가는 단풍길을 놓칠수 없네요.

 

 

 

 

 

 

 

 

 

 

 

일주문 나와서 바로 옆 대장경연구원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릅니다.

올라가는 길목에는 몇개의 건물동이 있는데 맨 마지막까지 오르면 해인선원이 나옵니다.

아주 적막한 곳이구요.

이곳 못미쳐 우측으로 백련암으로 넘어가는 오솔길이 있습니다.

 

 

안내판 아래로 오솔길이 있는데 이곳으로 넘어가면 곧바로 지족암 앞이 됩니다.

 

 

 

 

 

지족암 일주문 도착

 

 

지족암은 신라말 고려초에 살았던 희랑대사의 기도처로서 원래 이름은 도솔암이었답니다.

근간에 불사를 크게 하여 여러가지 건물들이 들어섰다고 하네요.

 

 

지족암에서 내려다 본 희랑대

바로 건너편입니다.

 

 

특이하게도 대웅전이 산비탈에 옆으로 길게 지어져 여느 절집과는 다르게 대웅전 옆문이 정문처럼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대웅전 찾아 올라가는 길도 미로네요.

 

 

지족암의 대웅전 이름은 대몽각전입니다

지족암 내려와서 희랑대 가는 길에 올려다 본 풍경.

 

 

지족암에서 희랑대로 가는 샛길 만들기는 쉬울것 같은데 한참 내려와 다시 올라야 희랑대입니다.

희랑대는 희랑암이라고도 하구요.

 

 

 

 

 

문이 닫혀 있어 의아해 했는데 멧돼지 때문이네요.

 

 

돌을 잘 다듬어 정말 멋진 담장을 꾸미는 불사를 하고 있네요.

위에서 보면 화단형태가 되는데 올라가면서 보면 완전 작품입니다.

 

 

회랑대는 나반존자 기도처로 되어 있습니다.

나반존자는 보통 절에가면 독성각으로 되어 있는 곳에 모셔진 성자인데 확실한 정체가 없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라고도 하고 우리 단군신화의 주인공이라고도 합니다.

 

 

 

 

 

희랑대 뒷길을 오르면 곧바로 백련암으로 넘어가는 산길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백련암까지는 걸어서 대략 20분 거리.

산길로 올라가면서 내려다본 희랑대와 뒷편 지족암.

 

 

오름길에서 뒤돌아 본 건너편 산자락.

중간에 원당암이 보입니다.

 

 

산길을 넘어오면 다시 백련암으로 올라가는 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이 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백련암.

 

 

백련암의 절 대문.

해인사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난 겨울에도 한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늘 한적 합니다.

 

 

청정비구로서 오직 수행으로 일생을 마친 성철스님이 기거했던 곳입니다.

10년 장좌불와(長坐不臥)에 10년 동구불출(洞口不出)을 한 곳입니다.

한 말씀을 얻겠다고 옆에서서 인증샷 찍겠다고 한 고관대작 어느 누구도 그를 만나려면 삼천배를 하고 올라와야 했답니다.

 

 

성철 스님 입적 후 지은 고심원 안에는 스님의 좌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성철스님은 1980년대 조계종 최고 자리인 종정일때 조계종 분규를 비탄하며 백련사에 들어 이후 열반전까지 이곳 백련사에 머물었습니다.

1936년 출가해서 해인사에서만 57년 동안 칩거해 온 스님은 1993년 11월 4일 해인사 방장실인 퇴설당에서 가부좌한 채 제자 스님들에게 기대 입적했습니다.

 

 

 

그 옆에는 커다란 그림으로 성철스님의 다비 장면이 그려져 있구요.

지금도 이곳 백련암에는 삼천배를 하려고 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비록 스님은 계시지 않지만 그 분은 늘 계시나 봅니다.

무소유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의 화두를 풀기 위해서 오는 이들을 반기고 있는 백련암.

 

 

마당에는 국화 화분이 가득하고 누구든 가져가라고 써 두었네요.

 

 

백련암의 상징 불면석(佛面石)입니다.

어느 방향에서 보면 부처님 얼굴이 보이는데 지난번 왔을때는 분명 보였는데 이번에는 보이지 않네요.

탁해진 내 마음을 스스로 자책하여 봅니다.

 

 

불면석 앞에 있는 원통전.

관세음부처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기도하고 물러납니다.

 

 

불면석을 한바퀴 돌면서 부처님을 찾아 봅니다.

지난번 이곳 스님한테 이 방향에서 부처님을 볼 수 있다고 들었는데 햇살 때문인지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약수 한사발 가득 들이키고 다시 내려 옵니다.

 

 

백련암에는 노거수 나무들이 많아 참 운치 있답니다.

 

 

 

 

 

백련암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와 만난 국일암.

앳딘 차고지가 눈에 띕니다.

 

 

거의 빈집 분위기입니다.

적막감이 가득 하네요.

 

 

요령 하나가 달려 있는 이건 무얼까?

자세히 보니 '웃으면 복이와요'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네요.

 

 

 

 

 

정통??

이건 또 무슨 뜻일까?

너무 궁금하여 사전을 찾아 봤네요.

정통 : 승려가 똥을 눈 뒤에 항문을 씻는 물을 담는 통.

설마 이 내용을 눈에 띄라고 붙여 둔 건 아니겠지요?

 

 

국일암에서 가장 절집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 있길래 앞쪽으로 가 보니 해우소이네요.

 

 

 

 

 

국일암에서 왼편 산길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약수암입니다.

중간에 부도가 한기 있는데 너무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네요.

 

 

약수암 뒷문으로 슬쩍 들어가니 난간에 곶감 몇 알을 매어 두었네요.

어느 눈 밝은 까마귀 봤다하면 끝장입니다.

 

 

약수암

이곳은 비구니 도량으로 1904년 비구니 스님인 성주스님이 창건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측 마당 한켠에 약수가 나오는 우물이 있네요.

 

 

이런 형태의 약수터를 처음 봅니다.

겨우 만나는 보살이 있길래 물어 봤습니다.

이 약수 때문에 약수암이 된 거예요?

몰라요, 난 잘 모릅니다. 난 아무것도 몰라요.. 하면서 황급히 물러 납니다.

내가 뭘 잘못 물어봤나??

 

 

 

 

 

약수암을 나와서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다사 한참 올라와야 합니다.

약수암 입구에서 윗쪽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있는데 그곳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국일암에서 내려오는 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해인사 올라가는 도로와 만나는 곳입니다.

해인사 들려서 이 구간(백련사)을 차량으로 오를려면 이곳 아랫쪽에 있는 경비원이 제지하는 해인사 갈림길에서 백련암으로 올라간다고 하면 통과 시켜 줍니다.

인파가 많이 몰릴때는 통과 불허할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구요.

 

 

곧이어 들린 성철스님 사리탑.

성철스님을 마지막까지 지켜 보내 드렸던 원택스님이 큰스님의 가르침을 그르치면서 건립한 사리탑입니다. 

살아서 성철 스님을 20년간이나 모신 원택스님은 그 후 큰스님의 뜻을 위반한게 몇가지 되는데,

산청 생가에 절을 짓는다든지, 백련사에 단청을 했다든지, 그리고 이곳에 이런 거창한 사리탑을 세웠다든지...

그대신 지켜지고 있는것도 있답니다.

백련사에는 지금도 개인의 축원은 빌어주지 않고 있답니다.

성철스님이 생전 말씀인 '자기 공덕은 자기가 쌓아야하고 자기 기도는 자기가 해야한다'는 가르침은 지켜지고 있습니다.

 

 

성철스님이 살아 환생한다면 잘했다할까 나무랄까?

원택스님은 분명 답을 알고 있을것입니다.

 

 

완벽한 스톤 발란싱

생전의 성철스님의 허허로운 웃음과 허름한 장삼자락을 생각케하는 시간입니다.

 

 

 

 

 

 

 

 

아주 별것도 아닌, 해인사 올라가는 길의 경비초소.

그렇지만 아주 특이하게 눈에 띄는 건물입니다.

 

 

주차장 내려와서 들린 성보박물관

마침 동양화가 최종국화백의 '수묵화 산문에 들다'라는 제목으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네요.

흑백이 그림이 되는 묘미를 한껏 느끼게 하여주는 작품 20여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마침 작가분도 있어 이런저런 이야가 한참 나눠 봤습니다.

위 작품은 '청량산' 이란 제목입니다.

 

 

이건 '해인사 백련암'이구요.

 

 

이건 한쪽 긴 벽을 통채로 차지하고 있는 '독도'라는 작품입니다.

클릭하면 크게 보여 집니다.

우리가 흔히 독도를 탐방하면 동도가 우측이 있어 그곳에 접안을 하게 되는데 이 그림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가 보지 못한 독도의 반대편입니다.

일본에서 본 독도를 그렸다고 하네요.

 

작가와 이야기 나누면서 간간 작품에 대한 가격이야기도 했습니다.

윗 작품의 가격은?

"3억은 받아야 되지 않을까요." 

 

 

박물관 구경하고 오늘 마지막 탐방지로 길상암을 찾아 내려 갑니다.

되돌아가는 길이라 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길상암 입구에서 주차를 합니다.

이곳은 소리길 구간이라 그곳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입니다.

 

바위에 써 둔 글씨

길상암은 바로 적고..

밑에 불타미아무나.는 꺼꾸로 적었네요.

왜 그랬을까요? 참 궁금합니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길상암 입구

 

 

좌측으로는 소리길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적멸보궁으로 이곳에도 부처님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고 하는데 근래들어 부처님 사리의 헤픔으로 인하여 관심이 많이 사그라 들었습니다.

길상암은 근간 1972년에 창건한 절입니다.

 

 

기나긴 계단길을 한참 올라야 합니다.

 

 

중간쯤 올라 내려다 본 계단길.

 

 

 

 

 

대웅전이 있고 대장전이 있는데 대장전에는 윤장대가 양쪽으로 한쌍 있습니다.

근간에 만들어 진듯 하네요.

불경을 읽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만든것으로서 이것 한바퀴 돌리면 불경 한권 뗀거나 마찬가지..

우리나라 제대로 된 윤장대는 이곳에...

 

 

종각입니다. 별도로 의상대라고 합니다.

 

 

대웅전 내부.

아미타불을 주불로 하여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호위하고 있습니다.

다른 절집 부처님 방에서는 알지 못했던 것.

신라면과 무파마로 된 컵라면을 부처님이 좋아 한다는 사실....

속으로 약간 웃으면서 .. 해인사 13암자 투어를 마무리 합니다.

가을 오후 햇살이 이르게 지고 있네요.

 

먼저글인 1부는 이곳에...^^

 

 

 

Comments

  • 붉은 단풍에 눈이 부십니다.
    기억력이 형편 없는 제가 지금도 성철 스님의 유언을 지금도 기억을 합니다.
    성철 스님의 화려한(?) 사리탑을 보니 왠지 좀 화가 나기도 하고 씁씁한 기분입니다.
    네...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길상암 ? 길상사 ? 무슨 연결 고리가 있는지 ?? ㅋ
    아~ 부처님께서 라면을 좋아 하시는군요.
    그럼 다음에는 현금 시주 대신에 컵라면을 하나 챙겨 가야겠습니다 ~^^

    • 이곳 길상암은 조성된지 오래되지 않아 아무래도 서울의 길상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초라한 곳이 아닐까 합니다.
      단풍이 아직은 많이 남아 있어 가을 분위기가 온연하고
      사람들이 제법 많이 찾아 오시는데 100%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걸 보니
      정말 우리나라 사람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여 봤습니다.
      저도 암자에 들리면 우선 모자를 벗어 예를 갖추고 마스크를 끼고 돌아 다녔습니다.
      산길로 접어들면 마스코 풀고..ㅎ
      성철 스님의 사리탑이나 생가 복원이나 다비 후 사리 수습이나 또는 백련암 단청 채색이나 모두 성철스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데
      가장 가까이 마지막까지 모셨던 원택스님의 뜻을 가까이에서 느껴보니 그 나름의 생각도 읽혀지기도 하였습니다.
      길상암 부처님 전에 놓인 라면 두박스는 조금 황당하다는 느낌이 들었구요.^^

  • 아직도 단풍이 이렇게 남어 있는줄 알었으면...
    며칠전 대구에 조카딸이 이사도 하였고 조금 무엇을 전해줄 것도 있어 갔다가
    저녁때까지 잡힐것 같에 핑계를 댄 것이 오늘 대구에 볼일을 일찍 끝내고
    집에 가는길에 해인사쪽으로해서 단풍구경을 하며 갈 작정이라고 하였더니
    가을날 해가 짧은데 이제 무슨 해인사냐고 하는 말에 잠시 망설였던 것이 후회되는군요.
    우리나라 큰스님 이야기나 큰절집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그런데에는 늘 공부를 해도 지식이 부족하여 댓글마져도...
    그러다 보니 저의 깜냥 딱 그수준인 매달린 곶감에 눈길이 가고 그곶감 숫자나 헤아려봅니다...ㅎ
    오늘도 두번째로 지리산넘어 남도쪽 감과수원을 가니 그 농원주인이 슬쩍 하는 말..
    거~ 참 장사하는분은 아니고 무슨 곶감을 그리...???
    어쨌든 두편에 이어진 해인사와 함께 여러 암자구경
    그리고 불교에 대한 공부 또 단풍구경까지 잘 보았습니다.
    죽을때까지 공부...이말도 잘 새겨두겠습니다........^^

    • 해인사 투어하고 오후 4시쯤 내려오는데 그 시간에 입장을 하는 차들이 매표소에 길게 줄을 서 있는걸 보고 놀랐습니다.
      주말이지만 그래도 늦은 시각에 오는분들이 꽤 많았는데 제가 아침 9시 반쯤 도착 할때는 오히려 한가했구요.
      늦게 해인사 찾는 분들이 많았는데 형님께서도 조금 늦게 가셔도 여러가지 가을 운치 가득히 느끼시리라 생각도 됩니다.
      형님께서 감 구입 하는 이야기 들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 봅니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것 준비하기도 바쁜 세상에 형님 내외분의 고마움이 늘 가득하여 지구요.
      저도 공부하다가 죽어라하는 그 말이
      많이 와 닿습니다.
      결국 인생이란게 부질없이 살다가 가는건데 의미 하나를 두자면 평생 알아가면서 익혀 가면서 사는게 아닌가 합니다.
      이번주는 햇살이 고운 날들이 이어지는데
      가을 나들이 자주 다니시면서
      파란 하늘 구경도 마음껏 하시길 바랍니다.^^

  • 하마 2020.11.10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긴긴 산행시간동안 셔터누르시는 시간도 만만치 않으셨겠습니다.
    한컷한컷 모두 작품사진같습니다. 역시 가을 단풍과 산사의 궁합은 최고네요.
    백련암에서는 경건함이 느껴집니다. 성철스님의 좌상이 생전의 스님 얼굴이 아닌듯 보여지는게 아쉽습니다.
    웅장하고 완벽한 스톤발란싱의 성철스님 사리탑은 이또한 스님께서 살아오셔서 보았다면 불호령이 떨어졌을듯하구요.
    승복을 누더기처럼 기워입으시던 스님의 공덕을 후대스님들께서 잘못 판단하신건 아니신지....
    저희집 장식장유리에 낙엽에 코팅된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새삼 다시 보게됩니다.
    그런데 무파마와 신라면 큰컵이 부처님의 취향이었다는걸 첨알았습니다. ^^*
    두가님 덕분에 가을의 끝자락까지 눈호강 합니다.
    긴 시간 사찰순례를 하시며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 이전에는 산행을 하면서 사진을 참 많이도 찍어 되돌아와서 그걸 추려내는데도 피곤했는데 요즘은 요령이 생겨 그림이 될만한 장면만 찍으니 사진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많이 준듯 합니다.
      성철스님은 참 대단한 분..
      8년을 장좌불와 했다고 하니..
      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한것을 뜻하는데 우리네 소인배들은 하루만 눕지 않아도 죽을 지경일 것인데..
      성철 스님을 20년간 모시고 마지막 입적때까지 곁을 지킨분이 원택스님인데 이분의 여러가지 의미도 이번에 많이 되새겨 봤답니다.
      그래도 제 생각에는 성철스님의 뜻대로 소백하게 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구요.
      우리나라 옛 대통령이나 위인들의 동상도 제 생각에는 실물크기로 만들었어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
      산의 정상석도 크기 경쟁하지 말고 좀 소백하고 예쁜 것으로 하며 얼마나 좋을까 생각됩니다.
      아마도 국민성의 여파가 아닐까 짐작을 하구요.
      나름대로 제법 신경을 쓴 여행길이었는데 호응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마님.^^

  • 세이지 2020.11.12 04: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멋진 여행을 하는 방법도 있네요.
    산속 암자들이 마치 한적한 어느 시골 동네의 여염집처럼 다감하게 느껴집니다.
    단풍이 고운 호젓한 오솔길 더러는 기와에 떨어진 마른 잎 이 가을의 아름다움을 모두 보여 주시네요.
    사진 고수와 하수를 한 눈에 알아보는 방법이 셔터 누르는 횟수에 있다고 했는데.....^^
    디지털 카메라 처음 나왔을 때 지족암의 스님이 사진 동아리 회원이셔서 자주 가 보았습니다.
    해인사 갈 때마다 입장료 내라고 해서 모두 지족암 신도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도 무주심이란 법명을 얻어서 자주 가 보았는데 눈에 익은 정겨운 오솔길이 보이네요.
    그 때는 회원이셨던 신부님도 지족암의 신도증을 가지고 계셨는데 모이면
    스님은 항상 ***신부님도 내 신도 라면서 우릴 즐겁게 하셨습니다.
    두가님 발길 따라 가보 싶습니다.

    • 해인사 입장료가 불만이 많은데 기본이 7000원입니다.ㅎ
      주차료와 입장료 합쳐서..
      저도 고종사촌 형님이 교사직에서 은퇴하고 뭔 연줄로 갔는지 이곳 해인사 총무가 되어 한 십년 동안은 이름만 들먹이면 그냥 통과로 다녔는데 그 뒤 관두어버려 지금은 꼬박꼬박 거금내고 들락거리고 있답니다.
      해인사 암자들은 세이지님 말씀대로 고즈녁한 느낌은 없고 부잣집같은 기분이 드는 곳들이었습니다.
      범어사 원효암에서 암자 투어의 진수를 맛보고 그 뒤 가끔 암자들을 둘러보는데 이곳 해인사 산내암자 중에서는 그래도 백련암이 조금 느낌이 나긴 하지만 그것도 우람하게 지어진 고심원 때문에 거의 올라오던 느낌이 사그라 드는 기분이었구요.
      암튼 세이지님께서 다음에 한번 둘러보시고 옳은 평가와 멋진 소감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 영등포Jim 2021.03.21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0년전 해인사 많이 다니고 지족암에 때때로 머물렀던 기억도 나는데,
    스스로 신이 아니라고 선언한 석가모니나, 신격화를 하지 말라고 했다고 알려진 성철, 일타 등의 유언이 있었다고도 하고 아니라고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중국 문화권에서 석가모니는 신격화 되었다치고, 그런데 현존했던 노승려들도 아주 제대로 신격화를 해 놨구나. 중님들이 돈벌이에 미쳤고, 신이 아닌 존재에 기도하는 기도처라니 ... 이젠 좀 우습기도 하다. 그냥 절은 무신론 구도자들의 수행처로 족하다.

    • 되집어 올라가보면 어찌 요즘만 그럴까요?
      그리고 불교뿐만 아니고 모든 종교가 비슷하게 변해져 버린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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