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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일기

천등산 산행과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 있는 봉정사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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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내륙의 양반 도시, 안동에 있는 천등산(天燈山)을 다녀왔습니다.

울고 넘는 박달재가 있는 제천의 천둥산과는 다른 산입니다.

안동 천등산은 소나무 숲길로 되어 있는 순한 산길에 전체 산을 한 바퀴 다 돌아도 3시간 정도만 하면 된답니다.

천등산보다는 산자락 아래 자리한 봉정사가 훨씬 더 유명하지요.

 

그리크지 않은 이 사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13세기 고려시대 지은 극락전이 있고 조선시대 지은 대웅전도 있는데 둘 다 국보문화재입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한국의 산지 승원 7곳이 지정이 되어 있는데 조그만 사찰이면서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곳이 봉정사입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지 승원 : 통도사, 선암사, 대흥사, 마곡사, 법주사, 부석사, 봉정사)

 

봉정사는 12년 만에 찾았네요. (2011년 방문기 : 보기)

영선암도 공사 중이고 봉정사도 만세루 보수 공사 중으로 절간이 조금 어수선하여 이전만큼 운치 있게 즐기지 못했답니다.

카메라를 들고 가긴 갔는데 메모리를 끼우지 않고 갔네유. 폰 사진들입니다.

 

 

산행지 : 천등산

일 시 : 2023년 2월 25일

산행 코스 :

봉정사 주차장 - 1코스 - 관음굴 - 수리재 - 정상 - 천등굴 - 개목사 - 영산암 - 봉정사 - 명옥대 - 주차장(원점회귀)

산행 시간 : 3시간 + 봉정사 관람

 

 

절집 창건 전문인 의상의 제자 능인이 이곳 대망산(천등산의 옛 이름)에서 도를 닦고 있는 중 천사의 유혹을 받았답니다.

그걸 과감히 뿌리치고 천녀를 나무랐는데 그 뒤 감명받은 하늘의 천사가 등불로 도 닦는 걸 도왔다고 하여 산 이름을 천등산(天燈山)으로 했다는...

능인스님이 봉정사 창건주랍니다.

 

 

천등산 등산지도

등산지도에 영선암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영산암의 잘못된 오기입니다.

위 지도의 주황색 선을 따라 산행을 했는데 산행보다는 봉정사 관람이 목적이라 산행은 부록 개념으로 다녀왔습니다.

 

봉정사 주차장 - 1코스 - 관음굴 - 수리재 - 정상 - 천등굴 - 개목사 - 영산암 - 봉정사 - 명옥대 - 주차장(원점회귀)

 

 

봉정사 주차장.

좌측 산길로 오르면서 주차장에 2개 더 있습니다.

산행을 먼저 하고 산에서 봉정사로 내려오면 문화재관람료를 내지 않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답니다.

산행 들머리는 좌측 포장도로 오르막길.

 

 

이런 이정표가 산행길 곳곳에 세워져 있어 길이 헷갈리는 곳은 없습니다.

 

 

산행 내내 조망 트이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소나무 숲길로 되어 있는 적당한 오르막길이 이어지구요.

봉정사 주차장에서 1코스로 올라 정상까지는 약 3.5km 정도 됩니다. 2시간 정도 잡으면 넉넉하구요.

 

 

이곳도 송이 산지라 그물로 온통 막아 놨는데 이게 너무 산만하게 변해서 보기 흉합니다.

 

 

산행은 547봉을 기점으로 다시 수리재까지 내리막이 이어집니다.

어느 봉우리에 있는 나무패에 예쁜 내용의 시 한 편이 적혀 있었답니다.

 

숲 속 결혼식

 

아카시아향 자지러지던 날

천등산 숲에서

모처럼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서후의 까투리 양과

북후의 장끼 군이

온갖 산새들의 합창 축가 속에

결혼식을 마치고

장끼가 까투리를 안고

학가산 쪽으로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그다음 일은 난 몰라요.

정말로 모른다니까요.

설령 안다고 해도

차마 말할 수가 없어요.

 

- 이 수 일

 

 

수리재로 내려가면서 등산로에서 벗어난 우측 20여 m 아래에 관음굴이 있습니다.

안내 표시판이 있어 쉽사리 찾을 수 있구요.

자연 석굴로서 그 뒤 입구와 주변을 약간 다듬은 형태이네요.

내부가 제법 넓은데 시멘트에 금칠을 한듯한 관음상을 모셔져 있습니다.

 

 

주변도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고 굴 입구에 목탁도 있는 걸 보니 아래 암자의 스님이 올라와서 불경을 드리는 것 같네요.

 

 

숲 사이로 멀리 천등산이 보이네요.

 

 

수리재를 기점으로 다시 오르막입니다.

 

 

가까워지는 천등산

 

 

이런 쉼터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어 소나무 숲 힐링으로 소풍 같은 가벼운 산행을 즐기기 좋은 산입니다.

 

 

다시 숲길 오르막 구간을 오르면,

 

 

정상 같은 느낌의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정상은 개목사 방향으로 평길을 100여 m 더 가야 합니다.

정상을 다녀온 다음 이곳에서 천등굴, 봉정사 방향으로 하산합니다.

 

 

천등산 정상

산행 내내 조망이 트이지 않는 아쉬움이 있네요.

 

 

천등굴, 봉정사 안내판이 있는 곳까지 되돌아 와서 100여m 하산을 하면 천등굴 입구입니다.

 

 

커다란 바위 사면아래 자연 암굴 형태인데 굴이라기 보담 바위 그늘로 보면 되겠네요.

봉정사를 창건한 능인스님이 이 동굴에서 수도를 하다가 천사의 유혹을 받은 곳이구요.

안동넷에 소개된 이곳 전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능인대사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법문에 정진하기 위하여 대망산 바위굴에서 계절이 지나가는 것도 잊고, 하루에 한 끼 생식을 하며 도를 닦고 있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휘몰아치는 겨울에도 나무아미타불, 찌는 듯한 더위의 여름에도 땀을 씻을 겨를도 없이 나무아미타불, 마음과 몸을 나른히 풀어지게 하는 아지랑이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봄에도 나무아미타불, 낙엽이 지는 가을에도 나무아미타불뿐이었습니다.
괴괴한 산속의 무서움과 고독 같은 것은 이랑 곳 없었습니다. 이렇게 10년을 줄곧 도를 닦기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밤 홀연히 아름다운 한 여인이 앞에 나타나
"여보세요. 낭군님?"
옥을 굴리듯 낭랑한 목소리로 그를 불렸습니다. 미처 능인이 고개를 들기도 전에 보드라운 손길이 능인의 손을 살며시 잡는 것이 아닌가! 능인이 고개를 들어보니 과연 천하에 절색이라! 고운 살결에 반듯한 이마와 까만 눈동자, 오뚝한 콧날, 거기에는 지혜와 정열이 샘솟는 것 같아 진정 젊은 능인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낭군님!" 하며 다시 한번 맑은 소리로 그를 불렸습니다.
"소녀는 낭군님의 지고하신 덕을 사모하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낭군님과 함께 살아간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부디 낭군님을 모시고 지내게 하여 주옵소서." 하는데 여인의 음성은 간결하면서도 가슴을 흔드는 이상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능인은 준엄하게 여인을 꾸짖었습니다.
"나는 안일을 원하지 않으며 오직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공력을 사모할 뿐 세속의 어떤 기쁨도 바라지 않는다. 썩 물러나 네 집으로 돌아가거라!"라고 하는 꾸중 소리에 온 산천이 울리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계속 유혹을 하며 쉽게 돌아가지 않았고, 능인도 끝내 거절하며 오히려 여인에게 깨달음을 주어 돌아가게 했습니다.
여인이 돌아서자 갑자기 구름이 몰려들더니 여인을 사뿐히 들어 하늘로 올리자 여인은
"대사는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나는 천상 옥황상제의 명으로 당신의 뜻을 시험코자 왔습니다. 이제 그 깊은 뜻을 알게 되었사오니 부디 훌륭한 인재가 되기를 비옵니다." 하며 여인이 사라지자 그곳에서 산뜻한 기운이 내려오더니 굴 주변을 환히 비추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또다시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대사 아직도 수도를 많이 해야 할 텐데 굴이 너무 어둡습니다. 옥황상제께서 하늘의 등불을 보내드리오니 부디 그 불빛으로 더욱 깊은 도를 닦으시길 바라나이다."라고 하자 바로 그 바위 위에 커다란 등이 내려와 어둠을 쫓고 대낮같이 굴 안을 밝혀주었습니다.
능인은 그 환한 빛의 도움을 받아 더욱 열심히 수련하여 드디어 득도하고, 위대한 스님이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등의 덕택으로 수도하였다고 해서 그 굴은 천등굴, 대망산을 천등산(天燈山)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굴의 크기 규모를 비교하기 위하여 안쪽에 들어가 봤습니다.

폰으로 타이머 맞춰 사진 찍기가 힘드네유..ㅠ

 

 

천등굴에서 가파른 내리막을 주욱 내려가면..

 

 

좌측으로 개목사가 보입니다.

조선의 대표급 재상이었던 맹사성이 안동부사로 있던 시절, 안동의 지세를 보고 이곳에서 맹인이 많이 나는 까닳은 천등산의 산기(山氣) 때문이라고 하여 산 이름을 개목산 (開目山)으로 고쳐 불렀는데 이때 흥국사라고 불리던 절 이름도 개목사(開目寺)로 바꿔서 불렀다고 합니다.

 

 

개목사는 부속 건물 빼고는 원통전 하나만 있습니다.

절문 입구에 천등산 개목사라는 현판이 붙어 있구요.

잘 나갈 때는 99칸의 큰 절이었다고 합니다.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는 원통전 건물인데...

아쉬움이 살짝 듭니다.

조선 세조 3년(1457)에 지은 고건축물인데 1969년 해체 수리를 하면서 깔끔(?)하게 보수를 해버려 금방 지은 건물처럼 보입니다.

 

 

원통전 옆에 있는 산신각

원통전 현판은 우→좌 글씨인데 산신각은 반대로 되어 있네요.

같은 절집에서 헷갈리게...

 

 

원통전에는 관음보살이 호위불과 함께 모셔져 있고 바닥은 특이하게 온돌시설이 되어 있다는데 등산화 벗기가 싫어서 들어가 보질을 못했네요.

 

 

원통전 앞에는 배배 꼬인 향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어릴 때부터 인위적으로 맹근 작품이네요.

 

 

예쁜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요사채

 

 

 

 

 

개목사에서 왔던 길을 언덕까지 잠시 되돌아가서 봉정사로 내려갑니다.

 

 

이런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가면 봉정사 일주문으로 내려가서 다시 경내로 올라가야 하고 우측으로 가면 곧장 영산암과 봉정사로 가게 됩니다.

이곳에서 당연 우측길로..

 

 

영산암 위 산비탈에 조성되어 있는 부도탑

 

 

영산암은 한창 개보수중입니다.

조금 어수선하네요.

입구에 우화루(雨花樓)라는 현판이 달려 있습니다.

 

 

마당가운데 있는 이 반송이 최고 볼거리네요.

 

 

멋진 반송을 따서 이름을 지었는지 이름이 송암당(松岩堂)

 

 

바로 아래에 있는 봉정사로 내려왔습니다.

바로 보이는 건물이 대웅전.

국보로 지정이 되어 있구요.

이곳 봉정사 경내 건물들에 대하여는 지난 포스트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답니다. (보기)

 

 

앞에서 보는 대웅전

뒤편 만세루 건물이 보수 중이라 사진 찍기가 애매하네요.

 

 

대웅전은 누마루가 있다는 게 아주 특이하답니다.

 

 

여느 절집들의 본전건물에는 대개 꽃살무늬로 장식이 되어 있는데 이곳은 그냥 단조로운 사각 문살입니다.

 

 

그 앞에는 당간을 세운듯한 석주와 석등의 받침돌인듯한 조각물들이 있네요.

 

 

마당 좌측에서 보물로 지정이 된 화엄강당 건물이 있는데 지금은 종무소로 사용을 하고 있네요.

 

 

봉정사 최고의 볼거리 극락전입니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불명하나 1200년대 초 건축물로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되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서열이 바뀌게 되었구요.

근데 문제는 1970년대 개보수를 하면서 800년 역사를 새 단청으로 쏵 칠해 버렸다는 거..

그냥 보기에는 그저께 지은 건물로 보인답니다.

 

 

극락전 옆모습

사람인(人) 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 이런 형태를 맞배지붕이라고 하지유.

기둥은 약간 배흘림형태로 만들어져 있구요.

 

 

내부에는 인도풍 스타일의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구요.

아미타불은 극락정토를 관장하는 부처님인데 대개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대웅전 다음으로 많은 법당이기도 합니다.

 

 

바깥에는 새로 단청을 해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란 느낌이 무색해지는데 내부 천장을 보면 조금 기분이 살아난답니다.

 

 

법당 바닥도 원래는 이렇게 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마루 바닥이구요.

 

 

희미하게 남아있는 단청이 고스럽습니다.

 

 

기둥에 기대고 손으로 감싸 안아 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800년 전 그 시절로 돌아갑니다.

솔향 배인 나무를 세우고 다듬던 대목장의 손길이 전해 지네요.

 

 

이제 절을 벗어납니다.

노거수 보호수도 절과 같은 역사를 하고 있겠지요.

 

 

통일나무란 이름을 붙여 두었네요.

연대와 크기가 다른 나무가 뿌리가 연결되어 있는 연리목 형태입니다.

 

 

비스듬하게 자라고 있는 보호수 소나무.

 

 

상단의 나무줄기가 엄청나게 꼬여 있습니다.

 

 

 

 

 

일주문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다가..

 

 

옆 개울가에 있는 명옥대(鳴玉臺)에 잠시 들렸네요.

퇴계 이황이 16세에 이곳 와서 좀 놀았다는 곳인데 물이 떨어지는 계곡이라 낙수대(落水臺)라고 하였다가 50년 뒤 죽기 3년 전 66세에 다시 찾은 이황이 이 이름이 촌스럽다고 명옥대(鳴玉臺)라고 고쳤답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옥이 구르면서 우는 소리로 바꿨네요.

 

 

그 뒤 퇴계의 후학들이 이곳에 정자를 하나 지었답니다.

현판에는 초서체 완전 휘갈긴 창암정사(蒼巖精舍)라는 현판이 붙어 있네요.

 

 

명옥대 개울 옆 커다란 바위에는 제목으로 명옥대(鳴玉臺)라 새겨져 있고 그 옆에 띄어쓰기가 무시된 4행으로 된 해서체 각자가 있습니다.

내용은,

'辛乃玉李宰文緯世尹剛中欽中端中隆慶元年夏同遊開林築臺題詩以追退溪先生之志'

해석을 하면, '신내옥, 이재, 문위세, 윤강중, 흠중, 단중 형제가 융경 원년 여름에 이곳에서 수풀을 헤치고 놀다가 대를 쌓고 시를 지어 퇴계선생의 뜻을 기렸다.'는 것인데 융경 원년은 1567년이 되네요.

이 시기는 퇴계가 다시 이곳을 찾아 이름을 명옥대로 바꾼 1년 뒤이고 정자는 그 뒤 다시 100년이 지난 다음 지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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