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집 에어컨이 고장이 났다.
실외기가 고장이 났는데 AS를 불러 가스도 갈고 이것저것 손을 봤지만 해결도 되지 않고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는단다.
이걸 제대로 고치려면 실외기를 거실로 옮겨 놔 주면 AS를 해 주겠단다.
근데 바깥에 있는 실외기를 거실로 옮기는 비용이 30만 원.
그리고 수리하는데 대략 30만 원 예상.
다시 그 넘을 실외기 원래 있던 장소에 설치하는데 30만 원...
확실하게 수리된다는 보장도 없고...
그럼 다시 하나 새로 사지.. 하고 작정했다가..
쫴매라도 더 신형 나오고 여름 시즌오프하여 가격이 살짝 꺼질 때 사자며 계획하고, 그때까지는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기로 하고 독수리 삼 형제를 앞세워 다섯 명의 식구가 우리 집으로 몰려와 여름나기를 하였다.
한달동안 매일같이 북새통으로 지내다가 애들이 개학을 하는 바람에 그제 자기네 집으로 되돌아갔다.
갑자기 집은 절간이 되고..
오늘 이야기는 그중 막내 아인이 이야기.
위의 두 형은 지 엄마가 극성을 부려 일찌감치 훈민정음 득하고 영어, 한문도 어느 정도 습하여 유치원과 초등학교 입학을 무난하게 했는데 막내 아인이는 공부에는 일절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7살이 되어 유치원 재수를 하는 올해까지 본인 이름도 쓸 줄 모르는... 특이한 아이가 되어 있었지만.
어른들이 먼저 숟가락을 들어야 식사를 하고 아침저녁 현관문을 드나들 때마다 요란한 소리로 인사하고 잠자리 들 때, 아침에 일어나서도 문안인사를 하는 예쁜 아이.
그러면 되었다, 그깟 글자 모르면 어떠냐? 했지만 사실 우리도 속으로는 걱정.
지 엄마가 뒤늦게 아차..
이러다가 우리 아이 초등학교 입학하면 외계인 되겠다 하여..
뒤늦게 속성 모드로 열공 돌입하였다.
유아용 그림책으로 읽기 반복하여 어찌어찌하여 본인 이름 정도는 적게 되었는데,
이아인..이라는 엄청나게 적기 쉬운 이름을 스스로 적는 걸 보고 감격해하며 대견스러워하는 아인이 엄마.
노력 결과, 우리 집에 와서 한 달이 다 되어갈 즈음 받침이 없는 글자는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저녁밥상에는 독수리 삼 형제가 서로 막걸리 병을 가지고 싸우는데 내 술잔에 서로 부어 주겠다는 전쟁이다.
그렇게 더운 여름이 흘러가고 지네집에 갈 날짜가 가까워질 무렵.
저녁에 컴퓨터질을 하고 있는데 아인이가 편지를 써 왔다.
이전에도 생일날 같은 경우에는 편지를 써서 건네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지 엄마가 적어 준걸 따라 그린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순전히 본인의 실력으로 숨어서 쓴 편지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지만 감동적이다.
하라부지사랑해요♥
받침을 아직 배우지 못해 온전한 문체도 아니고 갱상도식 문법이라 매끄러움은 덜하지만 나는 이 편지를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연서(戀書)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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