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년 대
친구들과 놀러가기 전에,
챙겼던 물건들 중에 무엇이 가장 중요했을까요 ?
물론, 흥겨운 자리를 만들어 주는 기타와 코펠하고 중요한 먹거리인 꽁치통조림도 필수였지만..
제일 중요한 건, 알콜버너가 아니였을까요 ?
그 당시에는 알콜버너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흔치 않았습니다.
빌리려고 해도, 이런저런 핑게로 빌리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알콜버너를 가진 친구는 요즘 말로 "짱" 이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참, 위험한 알콜버너였습니다.
제 동창 녀석도 도봉산에서 식사 준비 중에 얼굴에 화상을 입어서,
한 동안 고생을 하는 걸 지켜 본 기억이 납니다( 70 년 당시에는 취사가 가능 했습니다..ㅎ)
지금은 가볍고 편리한 많은 종류의 다양한 가스버너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알콜로 가열을 하는 도중에 사고가 많이 난 기억이 납니다.
..
지난 주, 제 보물 창고 정리 중에 박스 하나를 발견해서 궁금하여 열어보니
제가 총각시절에 쓰던 물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데..
낡은 등산화와 낡은 배낭...그리고 그 중에 낡은 알콜버너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
..
저 버너만 보면 가슴을 저미게 하는 추억 하나가 떠오릅니다.
지금도 저 낡은 버너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군 입대 전, 학업을 중단하고 잠시 학비를 벌 요량으로..
지금의 안양에 규모가 작은 모 건설사에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방직 회사 길 건너편 쪽방에 월셋방을 얻어서,하루 하루 봉지쌀로 연명을 했습니다.
그 때는 석유곤로도 없어서,
모직회사에 다닌던 옆방 아가씨들에게 염치 좋게 빌려쓰곤 했습니다.
그 당시 저를 친 오빠처럼 따르던,
여 동생과 함께 광주에서 올라 온 옆방 아가씨는 수시로 반찬을 주곤했습니다.
그 친구는 일이 끝나면, 야학을 다니던 정말 성실했던 친구였습니다.
한 동안 다녔던 건설사는,
제주도 공사로 이전을 한다고 하여 할 수 없이 그만 두었습니다.
짐을 싸는데.. 그 친구가 저에게 낡은 버너를 내밀더군요.
"오빠~ 이 버너 새거는 아니지만 써요 ~ 어디가서 굶지말구요 " .....
어디서, 어떻게 구입을 한 버너인지는 지금은 기억이 안납니다..
..
낡은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꽤 많은 물건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 인연을 쉽게 끊지 못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을, 구분을 하기 싫어서 못 버리나 봅니다.
물론, 버리면 채워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물질에 대한 지나친 애착은 버릴 수는 있지만,
제 젊은 시절에, 타인이 저에게 베푼 선한 마음이 담긴 물건은 도저히 버릴 수가 없더군요.
저에게 저 낡은 알콜버너의 의미는
저에게 선한 의지를 베풀어 주신분에 대한 소중하고 아련한 추억을 담고 있어서
제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버릴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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