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과 그림

서정주의 詩 '신부'와 일월산 황씨부인의 전설 이야기

반응형



영양은 경북 내륙의 오지로서 한때는 인구가 7만이 넘는 곳이었는나 지금은 2만도 되지 않아(2018년 기준 17,356명) 전국에서 울릉도를 제외하고는 가장 적은 지자체입니다.

군(郡)단위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대구의 달성군이 27만명이 넘는 것과 비교할때 너무나 차이가 나는 곳이구요.


이런 오지의 영양에는 경북에서 소백산 다음으로 높은 일월산(日月山. 1,218m)이 있는데 산나물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리고 산나물보다도 더욱 이곳 일월산의 명성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 무속신앙의 아지트이기 때문...

전국의 무당님(?)들이 일월산 기(氣)를 받으려고 늘 붐비는 곳입니다.

무당들이 굿판을 할 때 가장 먼저 불러내는 신이 바로 일월산신이니 그 명성을 짐작 할 수 있구요.


이렇게 무속인들이 일월산에 들어와서 기를 받으면서 모시는 신이 바로 황씨부인입니다.

일월산에는 황씨부인을 모신 사당이 있구요.

황씨부인에 대하여는 옛부터 몇가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그 중 하나를 가지고 시로 만든 것이 서정주의 여섯번째 시집 '질마재 神話'에 실린 '신부(新婦)'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신부(新婦)


서정주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알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십년인가 오십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일월산 황씨부인에 대한 전설은 몇가지가 되는데 그 중 서정주의 '신부'에 관한 내용에 맞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3살 어린 새신랑(新郞)이 장가가서 신부(新婦)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게 되었다.
왁자지껄하던 손님들도 모두 떠나고 신방(新房)에 신랑(新郞)과 신부(新婦)만 남았는데,
다섯살 위 신부(新婦)가 따라주는 합환주(合歡酒)를 마시고 어린 신랑(新郞)은 촛불을 껐다. 


신부(新婦)의 옷고름을 풀어주어야 할 새신랑(新郞)은 돌아앉아 우두커니 창(窓)만 바라보고 있었다.
보름달 빛이 교교(皎皎)히 창(窓)을 하얗게 물들인 고요한 삼경(三更)에 신부(新婦)의 침 삼키는 소리가 적막(寂寞)을 깨뜨렸다.
바로 그때 ‘서걱서걱’ 창밖에서 음산(陰散)한 소리가 나더니 달빛 머금은 창에 칼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어린 새신랑(新郞)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아래위 이빨은 딱딱 부딪쳤다.
할머니한테 들었던 옛날 얘기가 생각났다.
첫날밤에 나이 든 신부(新婦)의 간부(奸夫)인 중놈이 다락에서 튀어나와 어린 신랑(新郞)을 칼로 찔러 죽여 뒷간에 빠뜨렸다는 얘기! 


“시, 시, 신부(新婦)는 빠, 빠, 빨리 부, 부, 불을 켜시오.” 


신부(新婦)가 불을 켜자 어린 신랑(新郞)은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신부(新婦)집은 발칵 뒤집혔다.
꿀물을 타 온다, 우황(牛黃)청심환(淸心丸)을 가지고 온다, 부산을 떠는데 .... 


새신랑(新郞)은 자기가 데리고 온 하인(下人) 억쇠를 불렀다.
행랑방(行廊房)에서 신부(新婦) 집 청지기와 함께 자던 억쇠가 불려왔다.
어느덧 동이 트자 새 신랑(新郞)은 억쇠가 고삐 잡은 당나귀를 타고 한걸음에 30리 밖 자기 집으로 가 버렸다. 


새신랑(新郞)은 두번 다시 신부(新婦) 집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스무번이나 바뀌며 세월(歲月)은 속절없이 흘렀다.
그때 그 새신랑(新郞)은 과거시험에 급제(及第)를 해서 벼슬길에 올랐고, 새 장가를 가서 아들딸에 손주까지 두고 옛일은 까마득히 망각(忘却)의 강(江)에 흘러 보내버렸다. 


어느 가을날,
친구(親舊)의 초청(招請)을 받아 그 집에서 푸짐한 술상(床)을 받았다.
송이 산적에 잘 익은 청주(淸酒)가 나왔다.
두 사람은 당시(唐詩)를 읊으며 주거니 받거니 술잔이 오갔다. 


그날도 휘영청 달이 밝아 창호(窓戶)가 하얗게 달빛에 물들었는데,
그때 ‘서걱서걱’ 20年 前 첫날밤 신방에서 들었던 그 소리,
그리고 창호(窓戶)지에 어른거리는 칼 그림자! 


그는 들고 있던 청주(淸酒) 잔을 떨어뜨리며. “저 소리, 저 그림자.” 하고 벌벌 떨었다.
친구(親舊)가 껄껄 웃으며


“이 사람아. 저 소리는 대나무잎 스치는 소리고 저것은 대나무잎 그림자야.” 


그는 얼어 붙었다.
세상(世上)에 이럴 수가! 


“맞아 바로 저 소리, 저 그림자였어. 그때 신방(新房) 밖에도 대나무가 있었지.” 


그는 실성(失性)한 사람처럼 친구(親舊)집을 나와 하인(下人)을 앞세워 밤새도록 나귀를 타고 삼경(三更) 녘에야 20年 전의 처가(妻家)에 다다랐다.

그 때의 새 신부(新婦)는 뒤뜰 별당(別堂)채에서 그때까지 잠 못 들고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물레를 돌리고 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부인!!!” 


하고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새 신부는 물레만 돌리며


“세월(歲月)이 많이도 흘렀습니다.”


그는 땅을 치며 회한(悔恨)의 눈물을 쏟았지만 세월(歲月)을 엮어 물레만 돌리는 새 신부(新婦)의 주름살은 펼 수가 없었다.
선비는 물레를 돌리고 있는 부인(婦人)의 손을 잡고 한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時間)이 흘렀을까?
고요한 적막(寂寞)을 깨고 부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서방님 어찌된 영문(令文)인지 연유(緣由)나 말씀을 좀 해 주시지요. 나는 소박(疏薄)맞은 女人으로 죄인 아닌 죄인으로 20年을 영문(令文)도 모르는체 이렇게 살아 왔습니다." 


더 이상 눈물도 말라버린 선비는,


"부인(婦人), 정말 미안하오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소."


그 때.. 첫날 밤의 일을 소상(昭詳)히 이야기를 하고 용서(容恕)를 구하였다.

새벽닭이 울고 먼동이 떠 오를 즈음에 이윽고 부인(婦人)은 말문을 열었다.


“낭군님은 이미 새 부인(婦人)과 자식(子息)들이 있으니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어서 본가(本家)로 돌아가십시오.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餘恨)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선비는 부인(婦人)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하였다.


"부인(婦人)!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이제 내가 당신의 기나긴 세월(歲月)을 보상하리다."


선비는 뜬눈으로 밤새고 그길로 하인(下人)을 불러 본가(本家)로 돌아와 아내에게 20年前의 첫날밤 이야기를 소상(昭詳)히 말하였다.

선비의 말을 끝까지 들은 부인(婦人)은 인자(仁慈)한 미소(微笑)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서방(書房)님 당장 모시고 오세요. 정실(正室) 부인(婦人)이 20年前에 있었으니 저는 앞으로 첩(妾)으로 살겠습니다. 그러나, 자식(子息)들은 본처(本妻)의 자식(子息)으로 올려 주십시오."


그 말에 하염없는 눈물만 흘리는 선비,
이윽고 말을 이었다.


"부인(婦人) 내가 그리 하리다. 그러나 부인(婦人)의 그 고운 심성(心性)을 죽을때까지 절대(絶對) 잊지 않겠소이다."


선비는 다음날 날이 밝자 하인(下人)들을 불러 꽃장식으로 된 가마와 꽃신과 비단옷을 가득 실어 본처(本妻)를 하루빨리 모셔오도록 명(命)하였다.


며칠 뒤 이윽고 꽃가마와 부인(婦人)이 도착(到着) 하자 선비의 아내가 비단길을 만들어 놓고 정중히 큰절을 올리고 안방으로 모시고는 자식(子息)들을 불러 놓고,

"앞으로 여기 계시는 분이 너의 어머님이시니 큰절을 올려라" 고 하니 자식(子息)들은 그간에 어머님으로 부터 자초지종(自初至終) 얘기를 들은 지라 큰절을 올리며 "어머님 이제부터 저희들이 정성(精誠)것 모시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 이후 어진 아내의 내조(內助)와 착한 자식(子息)들의 과거급제(科擧及第)로 자손대대(子孫代代)로 행복(幸福)하게 잘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가 그린 '한국의 신부(Korean Bride)'




반응형


Calendar
«   2024/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Recent Comments
Visits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