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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눈을 찾아 떠난 겨울 여행 - 섬진강과 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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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의 섬진강 상류 물길 옆에서 차박으로 자고 일어나니 자동차 안쪽의 창문에도 얼음으로 꽁꽁 얼어 있네요.

밤새 내 품은 입김들이 달아 날 곳이 없어 창에 붙었다가 모두 얼음이 되어 버렸네요.

겨울 차박은 몇 번의 경험이 있지만 이번이 가장 추웠던 것 같습니다.

 

매트와 자충매트를 더블로 깔고 그 위에 겨울 침낭 하나 다시 깔고 그 위에다 얼마 전에 구입한 얇지만 강력한 비박 침낭을 속 이불로 하고 다시 위에 동계 침낭 두 개 더 덮고 뒷문 쪽 발 아래쪽에는 하계용 침낭 두 개를 포개어서 외풍을 막고 그 사이에 성능 좋은 핫팩을 여섯 개 정도 놔두니 침낭 안쪽은 따스하고 포근한데 문제는 머리통.

덮어쓰면 갑갑하고 내어 놓으면 바깥 기온과 같으니 두통이 올 만큼 시렵네유.

 

암튼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라는 트레시 말을 되새기며,

인생 좌표 비슷하게 생각하는 글귀를 되새깁니다.

 

문제가 생겼어,,라고 말하는 대신,
상황이 생겼어,,라고 말하면 기분이 달라지고 도전이 되어진다고 하지요.

 

상황을 만들고 즐기는 것도 낭만의 한 축인데 오늘 아니면

 

언제 그리하리.^^

 

 

겨울 여행 : 2022년 12월 23일~25일(차박)

 

 

연말이고 크리스마스 시즌인데도 도로가 조용합니다.

바쁘게 다닐 필요가 없으니 미끄러운 눈길 운전도 천천히 가면 거의 안전합니다.

만약에 뭔 일이 생겨서 기껏 차 외관 조금 상하겠지요.

 

 

섬진강 옆에서 차박으로 자고 일어난 아침

전날 밤새 눈이 내렸는데 온 동네가 하얗습니다.

 

 

거의 비에이 분위기네요.

 

 

 

 

 

도로는 많이 미끄럽지만 운치 만점입니다.

 

 

잠시 바깥 구경 하려고 내리면 무릎까지 푹 푹 빠지네요.

이번에 김여사도 나도 기다란 방한화를 가져왔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답니다.

 

 

섬진강

 

 

아주 오래전 대구 영대 앞의 널찍한 도로에 눈이 가득 내렸는데 기분 낸다고 부리끼 스윽 잡았더니 앞 유리창으로 360도 회전 파노라마가 전개되는데...

그때 놀란 뒤로는 저얼때 눈길에서 일부러 브레이크 밟지 않는답니다.

 

 

 

 

 

섬진강은 아직 얼지 않았네요.

 

 

 

 

 

 

 

 

모닝커피 한잔 태워서 차가운 섬진강 강바람을 맞으며 먹는 맛..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맛난 커피가 다방 커피이고, 그다음이 믹스커피..

한 번에 꼭 두 개씩 털어 넣는답니다.

 

 

 

 

 

 

 

 

고속도로와 일반 국도는 실시간으로 제설작업이 되는데 이런 지방도나 시골 도로는 자체 제설작업을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제호정 고택에도 눈이 가득....

 

 

함허정

 

 

풍경이 참 좋습니다.

 

 

 

 

 

연자방아

 

 

 

 

 

 

 

 

선운사 가는 길.

손바닥처럼 생긴 암벽 아래 암자가 호젓하게 보입니다.

 

 

명물 병바위

 

 

사람 옆모습을 많이 닮았지요.

아주 커다란 바위입니다.

높이가 35m 라나...

 

 

선운사 도솔천 뒤편 노적봉이 이곳에서는 이렇게 보이네요.

 

 

선운사 도착

도솔천 옆의 송악.

크기 나이 규모 모두 우리나라 최고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요.

 

 

김여사 눈이 부시다며 선글라스 차에 두고 왔다네요.

마당쇠 노릇 잠시 하고 오니 어설픈 눈사람 하나 맹글어 놨구요.

 

 

가게에서 점심 식사를 하며 주인아주머니의 푸념을 들었는데 그나마 오늘 사람 구경 조금 한다고 합니다.

이전 이삼일은 눈 폭탄이었다고..

 

 

커피가게도 손님맞이 눈 치우기를 하고 있구요.

 

 

일주문 지나고...

 

 

 

 

 

대다수 그냥 지나치는 선운사 부도밭.

추사의 명작 백파율사비가 있는 곳입니다.

 

 

華嚴宗主 白坡大律師 大機大用之碑

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 

앞면은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뒷면입니다.

我東近無律師一宗惟白坡可以當之故以律師書之大機大用是白坡八十年藉手著力處或有以機用殺活支離穿鑿是大不然凡對治凡夫者無處非殺活機用雖大蔵八萬無一法出於殺活機用之外者特人不知此義妄以殺活機用爲白坡拘執着相者是皆蜉蝣撼樹也是烏足以知白坡也昔与白坡頗有往復辨難者即與世人所妄議者大異此個處惟坡與吾知之雖萬般苦口説人皆不解悟者安得再起師來相對一笑也今作白坡碑面字若不大書特書於大機大用一句不足爲白坡碑也書示雪竇白巖諸門徒果老記付 貧無卓錐氣壓須彌事親如事佛家風最真實厥名兮亘璇不可説轉轉阮堂學士金正喜撰并書崇禎紀元後四戊午五月日立

 

내용은,

우리나라에는 근세에 율사(律師)의 한 종파가 없었는데 오직 백파(白坡)만이 이것에 해당할 만하다. 그러므로 율사로 썼다. 대기(大機)와 대용(大用)은 백파가 80년 동안 착수하고 힘을 쏟은 분야이다. 혹자는 기(機), 용(用)을 살(殺), 활(活)로 지리멸렬하게 천착(穿鑿)하기도 하나 이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무릇 평범한 사람들을 상대하여 다스리는 자는 어디에서건 살, 활, 기, 용이 아닌 것이 없으니 비록 『팔만대장경』이라 하더라도 살, 활, 기, 용의 밖으로 벗어나는 것은 한 가지 법도 없다. 다만 사람들이 그 의리를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살, 활, 기, 용을 백파를 구속했던 착상으로 여긴다면 이는 모두 하루살이가 큰 나무를 흔드는 것과 다름없으니 이것이 어찌 백파를 충분히 아는 것이겠는가.

예전에 백파와 더불어 자못 왕복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분변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곳 세상 사람들이 함부로 떠들어 대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오직 백파와 나만이 아는 것이니 비록 온갖 말을 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모두 이해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 어찌 율사를 다시 일으켜 세워 오게 하여 서로 마주하여 한번 웃을 수 있겠는가. 지금 백파의 비석에 새길 글자를 지음에 만약 대기대용(大機大用)이라는 한 구절을 큰 글씨로 특별히 쓰지 않는다면 백파의 비(碑)로서 부족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써서 설두(薛竇)와 백암(白巌) 여러 문도(門徒)에게 보인다.

다음과 같이 써서 붙인다. ‘가난하기로는 송곳 꽂을 땅도 없었으나 기개는 수미산(須彌山)을 누를 만하였네. 부모 섬기기를 부처 섬기듯 하매 가풍(家風)이 가장 진실하도다. 그 이름 긍선(亘璇)이니 전전(転転)한다 말할 수 없다네.

완당(阮堂) 학사(學士) 김정희가 글을 짓고 글씨를 쓰다

숭정기원후 네 번째 무오년5월 일 건립하다

 

이 비문은 추사의 글씨인데 세 곳이 추사 글씨가 아닌 곳이 있다고 하지요.

한번 찾아보세요.

추사와 초의 그리고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결국 백파를 존경하는 추사의 내심.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담긴 비석이랍니다.

 

그리고 이 비석은 많은 이들이 탁본을 떠 가는 바람에 훼손을 방지한다고 성보박물관으로 옮겼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하는데 현재 진품인지 가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추사보다는 완당이란 호가 더 많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곳 부도밭에서 추사와 초의선사의 재미있는 이야기와 백파 비석에 관한 이야기를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했는데 김여사 '춥다'하면서 훵 나가 버리네요.

 

 

 

 

 

성보 박물관 얼음과자.

 

 

 

 

 

까마귀가 적절한 장소에 거처를 마련했네요.

겨우내 식량은 확보

 

 

지장전

 

 

관음전

 

 

대웅전은 기둥 공사 중입니다.

 

 

이렇게 공사한다고 마당에 샘플 전시가 되어 있네요.

 

 

만세루

 

 

마당 가운데 있는 배롱나무

여름에 들리면 격하게 반기는 나무입니다.

 

 

 

 

 

영산전

 

 

영산전 옆에는 명부전.

천국 보낼까? 지옥으로 보낼까?

이거 결정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동백 북방 한계선이 선운사.

500년 된 동백이 가득합니다.

그 앞에 빨강 열매를  달고 있는 아이스 홍시.

 

 

 

 

 

눈길을 트여 놔서 그곳으로만 다녀야 합니다.ㅎ

 

 

 

 

 

 

 

 

천왕문

 

 

도솔암까지 다녀오기로..

선운사에서 편도 2.5km 정도 됩니다.

 

 

내원암 스님이 열씸히 삽질을 하고 계시네요.

 

 

 

 

 

도솔암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 됩니다.

 

 

장사송

나이는 600년 정도 되는 멋진 반송입니다.

 

 

 

 

 

그 앞에 있는 진흥굴

요즘 인증샷 명소로 알려져 있지요.

 

 

요렇게 찍으믄 된답니다.

이곳에서 도솔암은 300m 남짓 더 올라가면 되는데 솔섬 일몰과 맞추려면 시간이 아무래도 늦을 듯..

아쉬운 대로 발길을 되돌립니다.

 

 

시인 서정주의 '동구'란 시비가 있던 자리.

지금은 라이온스 비석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현수막으로 동구 시비를 복원하라는 외침이 적혀 있구요.

친일 행적으로 인하여 그의 시비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의 대표 시 '국화 옆에서'는 어찌 되나요...ㅠㅠ

 

 

시인은 1942년 고향에서 부친의 장례를 마치고, 상경하는 길에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려고 잠시 선운사 동구 주막집을 들르게 됩니다. 거기에서 마흔쯤 되어 보이는 인생도 알고 사랑도 알고, 아직도 미색이 남아 있는 주모와 마주하여 술에 취하게 됩니다. 미당의 나이는 서른 정도.

 

그날따라 손님도 없는 주막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술잔 속에서 시인과 주모는 요즘 말로 ‘썸 타는 눈빛’도 은근히 주고받았겠지요.
말이 통하는 사내를 만나자, 술기운을 빌어 주모는 구성지게 육자배기를 불렀습니다.

미당은 술과 육자배기에 취해,
“내 생애에서도 이것이 최고 정상이었네.”
이 말에 주모는 시인에게,  “동백꽃이 피거들랑 또 오시오, 이~” 화답을 합니다.

시인은 슬그머니 화가 났지요.
‘내일  오라고 하지…’.
미당은 술에 취해, 독일어 '이히 리베 디히(난 당신을 사랑해)'를 몇 번 쏟아냈지요.
주모가 그 뜻을 알든 모르든.
우리말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에는 무엇보다 쑥스러웠던 게지요.
사랑한다는 말조차  제대로 못 하고 그들은 헤어집니다.

시인은 10년 후쯤 이곳을 다시 찾습니다.  

주모는 전쟁통에 빨치산에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듣습니다.

 

그때 태어난 시가

 

'선운사 동구에서'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 선운사 동구 시비 사진이 있는 지난 글 보기 : 1, 2, 3, 4

 

겨울 여행 1 보기

겨울 여행 3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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