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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때늦게 내리는
물기 많은 눈을 바라보면서
눈송이들의 거사를 바라보면서
내가 앉은 이 의자도
언젠가는
눈 쌓인 겨울나무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기 많은 눈을 바라보면서
눈송이들의 거사를 바라보면서
내가 앉은 이 의자도
언젠가는
눈 쌓인 겨울나무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추억은 그렇게
아주 다른 곳에서
아주 다른 형식으로 영혼이 되는 것이라는
괜한 생각을 했다
당신이
북회귀선 아래 어디쯤
열대의 나라에서
오래전에 보냈을 소포가
이제야 도착을 했고
모든 걸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건 눈물이라고
난 소포를 뜯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소포엔 재난처럼 가버린 추억이
적혀 있었다
하얀 망각이 당신을 덮칠 때도 난 시퍼런 독약이
담긴 작은 병을 들고 기다리고 서 있을 거야 날 잊지
못하도록, 내가 잊지 못했던 것처럼
떨리며 떨리며
하얀 눈송이들이
추억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
허연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집 다락방과 학교 근처 도서관에서 손때 묻은 고전들을 꺼내 읽으며 어른이 됐다. 고전을 만나면서 세상이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진리를 깨달았고, 지금도 ‘독서는 유일한 세속적 초월’이라는 말을 책상머리에 붙여놓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단행본 도서의 베스트셀러 유발 요인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시 창작에서의 영화이미지 수용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게이오대학교 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현재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로 재직하고 있으며,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세계문학강독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산문집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고전탐닉』등이 있다. 2006년과 2007년 한국출판학술상을 수상했고 2013년 제5회 시작작품상을 수상했다.
이안의 '물고기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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