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금지에 대한 추억

Posted by 쏭하아빠 지구별 팀 블로그의 글 : 2018.07.03 10:16

 

 

 

막둥이 녀석이 요즘 들어서 귀가 시간이 늦어서 잔소리를 했습니다.

" 통통아 !  너요즘 귀가 시간 약속 안 지키네 ?  "

" 아부지~~ 봐줘용.. 요즘 일이 바뻐서 ㅎㅎ"

네...저는 가부장적이고 독재 아빠 인정합니다.

딸 아이들 시집 가기 전 까지 귀가시간을 11 시로 정 한 원시인 아버지입니다.

..

 

 

통행금지


 

중앙시장 어두운 골목 길 전봇대 뒤에서 눈치를 살 피는 세 녀석....

방범대원 아저씨의 호루라기 소리에 냅다 튑니다.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었던 요 녀석들..

방범대원 아저씨를 놀리면서 여유 있게 도망을 가다가 결국에는 포위가 됩니다.


아~~ 그 낭패감이란..

그 중 한 녀석이 갑자기 유일하게 불이 켜진 한 닭집 안으로 들어가서 사정을 합니다.


" 아저씨 군대 갈 친구랑 술을 마시다가 통행금지 시간을 넘겼어요..

방범 아저씨들 갈때 까지만 봐 주세요~~"


맘씨 좋으셨던 그 아저씨는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닭장차(그 당시 경찰 호송 차량)를 타는 걸 겨우 면 할 수 있었습니다.

 

 

 

 





 

2 년 전인가 ?  

동기들과 술 약속으로 왕십리 중앙시장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처음 가보는 그 식당을 더듬더듬 찾아가는데 한 골목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그 골목길....

아 ~오랜 세월 잠자고 있었던 아련한 추억과 마주했습니다.


동문이 운영을 하는 식당에서 약 10 m 더 들어가면, 청년시절 추억이 담긴 그 닭집이 있었던 골목길이였습니다.

동문들과 술을 마시다가 화장실 가는 척하고 나와서 그 골목길을 잠시 걸었습니다.

넉넉했던 그 아저씨의 닭집은 없어졌지만, 그 당시의 골목길 구조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습니다. 


..


전봇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30촉 전등불도 제 눈에는 보였습니다.

호루라기를 불면서 저희들 쫓아 오시던 방범대원 아저씨도 보였습니다.

긴 장발 머리를 휘날리면서 도망을 가는 녀석들도 보였습니다.

..


다행히 제 기억은..

그 시절 통행금지 시절에 대하여 여류로운 마음으로 호응을 해주는 듯 했습니다.

방범대원 아저씨를 따돌릴 달리기가 지금은 너무 버거워서일까요 ?

아니면 통행금지가 그리워지는 나이라서 그랬을까요 ?


그 당시 주점과 나이트클럽에서 통행금지 시간이 가까워지면 흘러 나온던 음악이 생각이 납니다.


빠빰빠 ~ 빠빰빠~~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


..


네~~ 또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를 쫓아 오시던 방범대원 아저씨들도...

철 없는 세 녀석을 라면까지 끓여 주시면서 재워 주시던 아저씨도..


..


*



세 녀석 모두 장가를 든 후 한 녀석이 느닷없이 그 아저씨 이야기를 하더군요. 

술 한잔한 김에 찾아가서 인사도 드리고 친해진 아저씨.. 

그 당시를 기억을 해주셔서 너무 고마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제 친구들이 아저씨 별명을 지어드렸습니다.

 

닭 잡는 모습도 무섭고 인상도 험악해서 산적 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그 별명을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인상은 산적인데 마음씨만은 법 없이도 산다는 말이 그 분을 위해서 생긴 말은 아닌지 ..

 

큰 따님을 시집 보내시고  뭐가 그리 급하시다고 아주머니를  바로 따라서 가신..

그 산적 아저씨가 문뜩 생각이 나서 글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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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7.03 16:40 신고 창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통행금지..시간
    통행금지..민간인(민통선)

    일단 이렇게 금지라는 것이 있으면 그걸 몰래
    아니면 살짜기 위법을 하면서 까지 통행을 하고 싶었던 그시절...
    출입금지라는 팻말과 줄이라도 쳐져 있으면
    슬쩍이 발이라도 한번 넘어 갔다 오면서 킬킬대던 그시절..
    아~ 그랬기에 그시절 저도 방범대사무실인 동네 리사무소까지 끌려 갔던 추억.
    또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민간인 통행금지 강가에서
    완전무장 군인들에게 걸려서 다행이 끌려가지는 않고 낚시대 압수도 없이 그냥 쫓겨만 났던 그추억...
    지금 생각하면 가지 말라면 안가면 그만인데 꼭 한번 가고 싶고..
    밤 늦게까지 무엇이 그리 재밌기에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그게 다 젊었기에 그래서 힘과 호기심이 넘쳐나던 그때
    말 그대로 우리들에게는 빛나던 그 시절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쏭빠님도 이것저것 지나간 옛일이 문뜩문뜩 생각이 나는 初老에 접어 든 것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duga.tistory.com BlogIcon 쏭하아빠 2018.07.04 06: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지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었던 시절..^^
      말씀처럼 빛나던 시절이였습니다.
      부모님께서 제발 좀 이발을 하라고 하셔도 징그럽게 말을 안듣고 길런던 장발 ..ㅎ
      장발로 파출소에 가서 군 입대 영장 받았다고 큰 소리 치고 빠져나온 기억도 납니다.
      창파 형님 !
      달력 나이로는 초로에 들어섰는데.. 철이 안들어서 잠시 보류 좀 하겠습니다 ~~~ ^^

  2. 2018.07.03 19:34 신고 하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등학교시절까지 통행금지가 있었던것같습니다.
    밤 12시가 되면 방범대원과 경찰아저씨들이 호각을 불며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던 기억이...
    전 국민의 잠을 그렇게 재워놓고 애덜은 많이 낳지 말라고 하고....^^*
    그 밤을 숨겨주신 맘씨좋은 닭집아저씨의 사연이 마치 제 머리속에 있는듯 그려지네요.
    만약 지금도 통행금지가 있다면? ㅋㅋ 이건 상상이 되질 않네요.
    오늘 야간 근무 중입니다. 밤 사이 사건사고나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uga.tistory.com BlogIcon 쏭하아빠 2018.07.04 07: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통 때 통행금지가 해제가 됐지요.
      그 당시 방범대원은 부족한 경찰인력을 대신했습니다.
      지금 통행금지가 있다면 ?
      난리가 날 겁니다..ㅎ 자영자는 장사가 안된다고..젊은 친구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밤 거리를 누비고 댕기지 않을까요..ㅋ
      언제 날 잡아서 안양서 한잔 해야 하는데.. 맘 만 앞섭니다....

  3. 2018.07.04 06:00 신고 에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날 60년대 중앙시장의 닭집이라믄 그 주위에 다른 닭집하고 개 잡는 집도 있었을텐데.....
    갑자기 그 곳을 떠 올리려니 닭하고 개 잡는 끔찍한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습니다.
    먹고 살기 힘 든 세상이었다 해도 당시 전 어린 나이지만 그 동물들이 왜 그리 불쌍했던지....ㅜㅜ
    그래서 그런가 시방도 닭하고 멍뭉이는 아예 입도 근처엘 가지 못 합니다.

    통해금지에 대해서는 저야 말로 할 얘기가 산더미같은데
    암튼 서울의 각 지원에서 즉결심판은 다 받은 걸로 기억이 되고
    또 하나 기억 되는 건.,
    당시 중정(중앙정보부)이나 군바리빽 하나 있으믄 통금이거고 나x이고 다 방면되었던 걸로 기억이 되는데
    당시 올매나 그게 부럽던지.....

    • Favicon of https://duga.tistory.com BlogIcon 쏭하아빠 2018.07.04 07: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시절에는 중앙시장 초입 좌,우측으로 닭하고 멍멍이를 잡고 파는 집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고기를 파는 가게가 있는데 지나 갈 때에는 저도 고개를 돌리고 갑니다.
      제가 그때는 워낙 달리기를 잘해서 통금에 걸린 적은 없습니다..ㅎ
      중정... 독재체제 유지를 위한 무소불위의 기관이란 어둡고 암흑했던 권력기관이란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4. 2018.07.04 12:34 신고 Favicon of https://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통금이란 것이 대도시에서 시행이 되었고 조그만 소도시나 시골에서는 거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야밤에 나이트에서 빠빠빠.. 노래는 아주 기억이 선명 합니다.ㅎ
    통금, 장발, 미니스커트, 금지곡..등등..
    세월 아득한 저편의 추억이기도 하네요.
    지금의 세월이 또 그만큼 흘러서 먼 후일 우리는어떤 추억을 되살려 오늘을 즐겨 볼까요? ^^

    • Favicon of https://duga.tistory.com BlogIcon 쏭하아빠 2018.07.04 1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도시나 시골서 통금의 영향을 덜 받았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그 당시 나이트클럽에는 댕긴 기억이 1 도 없어서 빠빠빠 노래는 전혀 모릅니다만..ㅎ
      하마님 말씀처럼 지금 통금을 실시 한다면 대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세월은 주름도 늘게 하지만, 추억도 늘게 하는군요.
      내 년이면 또 어떤 추억이... ??

  5. 2018.07.06 13:02 신고 마천루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릴때 고령 에서는 낮12시 밤12시면 손으로 돌리는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밤에 울리는 사이렌은 물론 통행금지 사이렌 이였습니다
    그러나 제사지내고온다면 아무말도 안했지요
    낮에 일하고나면 밤에 다닐일이 그의 없던 옛날 이야기 이지요
    그때는 무서워서 -웬귀신이야기. 도깨비이야기-가 동네마다 골짜기마다 많아서
    밤에는 아이들이 밤마실을 꺼려 했지요

    • Favicon of https://duga.tistory.com BlogIcon 쏭하아빠 2018.07.06 1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손으로 돌리는 사이렌 소리가 있었군요.
      그 당시 충북에는 통금이 없다는 건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인정(?) 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제사 지내고 온다고 하면 봐줬군요..ㅎ
      저도 어린 시절 방학 때 시골에 가면 할머니께서 호롱불 들도 화장실 까지 따라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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