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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해피트리,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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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나이가 만으로 마흔이니 결혼한지가 꽤 오래 되었네요. 

딸 결혼식 때, 전까지 다니던 회사에서 부모님께 선물한다면서 꽃집에 가서 가장 맘에 드는 화분 하나를 가져가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해서 가져온 게 나보다 키가 큰 해피트리 한그루.

그때 가격으로 15만원 정도라고 기억되네요.

 

날마다 해피하면서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거실에 두었는데 이게 서너 달 지나니 잎이 시들해지고 하얀 반점으로 벌레 먹은 것처럼 얼룩이 생기더군요.

영양이 부족해서 그런가 하여 두어 번 분갈이를 했는데도 마찬가지.

진딧물 약을 치고 영양제를 넣어도 효과가 없었답니다.

 

승질 난 김여사가 나무 모가지를 싹둑 잘라 버렸지유.

새로 싹이 나면 괜찮을 것 같아서.

몇 달 뒤 나무에서 새 순이 돋고 다시 잎이 열리기 시작하는데 역시 마찬가지 잎에 하얀 반점이 생기네요.

그렇게 몇 달 키우다가 보기 싫다고 김여사가 다시 기둥을 싹둑 자르고..

다시 그곳에서 가지가 돋고 잎이 나고 ..

조금 지나면 역시 잎에는 하얀 반점들이 생기고..

그러다가 해피트리는 거실에서 베란다 맨 구석자리로 옮겨져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거의 방치가 되었답니다.

 

이렇게 반복이 되었던 게 십수 년.

키다리 해피트리 기둥은 자꾸 짧아졌지요.

툭하면 한 번씩 잘라버린 기둥에서 모질게도 계속 새 순이 돋아 나오는 게 기특하여 내다 버리지도 못했답니다.

 

그러다가 올해 비가 내리는 5월 어느 날,

가끔 다니는 칠성시장 꽃백화점에 화분을 사러 가서 이걸 물어봤네요.

간단한 처방전을 알려 주더군요.

이제까지 분갈이를 할 때는 기존 화분의 흙 반 정도에다 구입한 배합토 반 정도를 섞어서 했는데 이러지 말고 화분의 흙을 모조리 덜어내고 모두 새로 구입한 분갈이 흙으로 넣어보라고 하네요.

아무래도 흙에 나쁜 박테리아가 있어 그런 것 같다고..

 

화분집에서 배합토 화분흙을 몇 포대 사서 집으로 가져와 해피트리를 뒤집고 뿌리에 있는 흙까지 모두 털어내고 분갈이 흙으로 완전히 바꿨답니다. 

마지막이란 기분으로 가지가 달려있던 몸통을 다시 싹둑 자르고,

 

보름 정도 지나니 죽을 줄 알았던 나무 기둥에서 새순이 돋네요.

새벽마다 일어나서 이거 쳐다보는 희열이 대단했답니다.

새 잎이 돋기 시작하는데 벌써 느낌이 다릅니다.

초록빛으로 반짝반짝한 잎사귀에는 이전에 있던 반점이 사라졌습니다.

돋아나는 이파리 하나하나가 너무나 찬란하게 빛납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해피트리는 거실로 다시 자리가 옮겨져 있답니다.

무성한 초록 이파리가 너무나 보기 좋네요.

 

왜 이걸 몰랐을까?

왜 진작에 꽃집에라도 한번 문의해보지 못했는지..ㅠ

해피트리한테 미안해 죽을 지경입니다.

툭하면 몸통을 잘라버리고 버릴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엄동설한 허허벌판에 홀로 선듯한 모습으로 그동안 지도 살아나려고 얼마나 발버둥  쳤을까?

참 마음이 짠했답니다.

 

오늘도 해피트리 잎사귀를 하나하나 만지면서 미안함을 가득 전합니다.

십 몇년 동안을 천대받으면서도 살아있어 준 게 더욱 고맙네요.

분갈이 하나만 제대로 해 주었다면 아무 고생도 하지 않았을 해피트리.

미안하면서도 행복합니다.

 

 

 

 

분 안에 있는 모든  흙을 모두 들어내는 분갈이를 한 후 열흘정도 지나니 이렇게 다시 가지가 돋고 깨끗한 잎이 피어 났답니다. (2023년 6월 24일 사진)

 

 

제법 잎이 무성해졌습니다. (2023년 6월 30일 사진)

 

 

 

반짝반짝한 잎이 너무 무성해져 한번씩 솎아내고 있답니다. (오늘 사진)

받침대는 유치원 옛날 나무의자인데 이거 구한다고 욕 봤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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