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페이스북을 보다가 귀중한 성동교 사진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귀중하다는 의미는, 제 유년시절 아련한 추억이 담겨진 건축물이기 때문입니다.
→ 살곶이 다리
↑ 왕십리 방향 ↓ 잠실,강남 방향
저 멀리 우측 언덕 위에는 지금의 한양대 건물이 보입니다.
손수레에 물건을 싣고 가는 아저씨도 보이고, 그 당시에는 소 달구지도 많았는데.. ㅎ
기동차 뒤를 따라 오는 버스는...16인승 마이크로 버스는 아닌지요 ?
호루라기를 물고 흰 장갑을 낀 교통 경찰관 아저씨의 폼이 멋지게 보입니다...^^
소 도시가 성숙한 대 도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대교라는 명칭의 수 많은 다리와 마천루처럼 높고 화려한 빌딩을 품고 있어야..
도시다운 도시로 인정을 받는 시대가 되였습니다.
저 성동교가...
수 많은 보수를 통해서 제가 알던 예 전의 성동교 인 줄 알았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늘어난 교통량으로 새롭게 놓은 다리라고 하더군요.
잠깐이지만, 배신을 당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네... 원인은 서울서 멀리 산다는 핑게를 앞세운 무관심이 주 원인 이지만..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솔직하게 서운한 마음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저 다리를 걸었던 추억을 안고 있는 한 사람으로,
저 다리에 심어 놓았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풀어보고 싶습니다.
유년시절 왕십리 만신(무당)집에 살던 저는, 그 무당 집 형들과 뚝섬에 자주 놀러 갔습니다.
굿판이 끝나면, 그 형들은 남은 고기와 떡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어린 저를 데리고 수영을 하러 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별도의 수영복이 없었던 시절이라서, 바지를 내리면 팬티가 수영복이던 시절이였습니다.
그 당시 막둥이였던 저를 형들은 깍두기 라고 놀렸던 기억이 납니다.
형들이 물놀이를 하는 동안에 벗어놓은 옷을 지키는 아주 중요한 직책을 맡았습니다...ㅎ
형들이 재미있게 몰놀이를 동안 신문지에 싸온 떡과 고기를..
요 깍두기 녀석은 티가 안나게 하려고 눈치를 보면서 조금씩 떼어 먹었습니다...^^
갈 때는 저 기동차를 타고, 올 때는 저 성동교를 걸어서 온 기억이 납니다.
유년시절 중 저에게는 가장 풍요로운 시절이였습니다..ㅎ
상옥이 형은 5살...후상이 형은 2살 위로 기억이 납니다.
친 동생 처럼 챙겨 준 ...정말 많이 보고 싶은 형 들 입니다...
성수동 쪽에서 오다보면 성동교 좌측 언덕에는 판잣집이 많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 기억이 맞는지...기억이 가물 거립니다.
수도사범대 부속중학교(현 세종대) 시절에는,
학교에서 부터 저 성수대교로 이어 진 뚝방길을 따라서 자주 걸었습니다.
걷다가 지치면, 뚝방길에 주저 앉아서 살곶이 다리를 바라보면서 잠시 쉬어 가곤 했습니다.
지금은 깔끔하게 보수를 한 살곶이 다리지만, 그 당시에는 그 주변이 몹시 지저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성동교로 이어진 성수동 뚝방길이 지금은..
봄이면 화려한 벚꽃 길로 주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길이라고 하더군요.
내 년 봄에는 성동교를 걸어서 뚝방길에 늘어선 벚꽃도 즐겨보고 싶습니다.
중학교 시절 제 친구 녀석을 꼬셔서, 버스표를 브라보콘으로 바꿔서 먹고
현재의 세종대에서 왕십리 까지 걸었던 추억도 음미를 하면서..ㅎ
사진 속 성동교 위를 달리던,
도심 속 느림의 미학인 기동차가 언제 사라졌는지는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내 추억이 담겨있는 모든 것을..
그저 무심하게, 묵묵하게 서 있는 저 성동교에게 오랜 세월 남겨 달라고 부탁만 할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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